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임진강 평화여행
(라디오21 / 에이런 / 2010-10-07)
라디오21의 에이런입니다.
10월 3일 (일) 10.4 남북공동선언 3주년을 기념하여 시민주권이 주최하고 노무현재단이 후원한, 남과 북의 경계를 따라 흐르고 있는 임진강을 따라 분단의 아픔이 서려 있는 현장과 역사유적들을 답사하는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임진강 평화여행’ 행사가 있었습니다.

버스가 서울역과 합정역에서 오전 8시 20분경 출발을 하였습니다.

첫 행선지는 서북전선의 최북단으로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대치한 곳에 위치한 오두산 통일전망대였습니다. 해설자인 이시우 사진작가가 분단 역사의 현장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해설자는 오두산 통일전망대로 오는 길인 자유로에 대해 노태우 정권 당시 이홍구 통일부장관이 통일방안을 구상하면서 자유를 통일의 원칙으로 삼고 자유로라는 이름을 만들었고 통일전망대를 만들면서 자유를 상징할 수 있는 사람으로 북한정권에 맞서다 죽음을 맞은 조만식 선생을 선정했다면서 현재의 시점에서 자유라는 개념의 강조는 북한과 이념적 대립을 일으킬 수 있으며 6·15 공동선언의 합의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일행은 4층 전망실로 올라갔습니다. 오두산 전망대는 임진강과 한강과 만나 서해로 나가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강 너머로 북한지역이 보였습니다. 이곳은 서해의 영향으로 간조와 만조 현상이 발생하는 곳입니다.
먼저 강 너머에 있는 북한지역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물을 봤습니다. 경계초소 뒤로 농사를 짓는 북한주민들이 실제 살고 있으며 식량부족, 에너지 부족으로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해설자는 정전협정문에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을 유엔군사령관(현재의 주한미군사령관)이 군사통제를 한다는 내용이 있으며 그것은 남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던가 불편한 구절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지적하였습니다.

이시우 해설자는 사과라는 말을 듣고 사과가 떠오르지 않고 배나 바나나가 떠오르면 미친 상태라고 할 수 있듯이 비무장지대라는 말에서 오히려 철조망과 군인, 온갖 무기 등 중무장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우리는 수십 년 간 집단적 정신분열증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하고, 자유의 반대말은 구속이나 억압이 아니라 관성이며 그것과 싸울 수 있는 무기가 반성과 성찰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소개하면서, 비무장지대라는 말에서 중무장지대를 연상하는 우리의 집단적 관성을 제도적, 법적으로 깨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 뇌리 속에 남아 있는 관성을 극복하기 위해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이 그 첫 출발이 될 수 있다며 이번 여행을 그러한 반성의 계기로 삼자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행선지는 실향민들을 위해 1972년에 조성된 임진각이었습니다.

일행은 6·25 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무기들의 전시된 곳으로 왔습니다.

해설자는 무기란 것이 인간이 다른 국가나 문명을 인정하지 않거나 믿지 못하는 전쟁의 문화 속에 발전해 온 것이라며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무기가 이해와 관용이 되도록 하자고 하였습니다.

망배단은 분단으로 인해 고향을 잃고 추석이면 임진각에 임시 제단을 설치하고 경모행사를 해 온 실향민들을 위해 1985년에 설치한 상설제단으로서 둘러싼 7개의 화강석 병풍은 이북 5도 및 미수복 경기, 강원의 풍물과 산천의 특징을 조각한 것입니다.

망배단 뒤쪽에 자유의 다리휴전협정 이후에 한국군 포로 1만 2773명이 귀환한 자유의 다리가 보였습니다. 한국군 포로들은 포로교환장소인 판문점에서 인민군이 지급한 옷을 벗고 속옷 바람으로 건너오며 ‘자유만세’를 외쳤었습니다.

자유의 다리 끝은 철망으로 막혀 있었고 통일의 염원이 담긴 리본들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철조망 너머로 임진강역에서 도라선역으로 가는 경의선 철교가 보였습니다.

일행은 검문을 받고 민통선을 통과했고 점심을 위해 통일촌의 장단콩 마을에 들렀습니다.

행사 참가자들은 시민주권 대표인 이해찬 전 총리와 사진촬영도 하였습니다.

다음 행선지는 비무장지대에서 300m 떨어져 있는 경의선 남측 최북단 역인 도라산역이었습니다. 2000년 6.15 선언 이후 경의선 복원공사가 시작되어서 2002년 2월 12일, 철도운행이 중단된 지 52년 만에 임진강역에서 임진강을 건너 도라산역까지 특별 망배열차가 운행되었고 2007년 12월 11일, 북측 판문역까지 화물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일행은 노무현 대통령이 심은 나무 앞에서 묵념을 올렸습니다.

10.4 남북공동선언의 막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해찬 시민주권 대표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내일이 10.4 정상선언 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 분단사가 얼마나 험난하고 어려웠는가를 되새기게 됩니다. 2000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하러 평양에 가실 적에 민주당 정책의장으로 특별수행원 단장이 되어 비행기를 타고 같이 갔는데 성남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서 잠깐 하는 사이에 평양 순안공항에 떨어지더라구요. 그러니까 비행기가 뜨고서 실제로 비행하는 시간은 30분이 걸릴까 말까 하는 그런 정도입니다. 처음 평양 순안공항에 내리며 설렜던 마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후로 남북관계를 노무현 대통령이 이어서 10.4 공동선언까지 했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이어서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아까 전망대에서 보신 것처럼 임진강 북한 쪽에 모래가 드러나 있지 않습니까? 그 모래만 파서 활용을 해도 돈으로 30조 원이 넘는 모래입니다. 그것을 파내야 서해로 물이 잘 빠져서 문산이나 파주나 수해가 안 일어납니다. 그게 모래가 꽉 막혀서 물이 안 빠지니까 만조 때에는 문산 쪽에 피해가 커지고 그러죠. 그런 것까지 다 포함해서 남북정상회담에서 경제교류협력 합의들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지금 다 역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북쪽에 채소와 약재 이런 것들을 얼마든지 싸게 재배할 수 있는데 북한에서 배추 심어서 가져오면 되지 않습니까? 물류센터도 그럴 때 쓸려고 만들어 놓았는데 지금 녹만 슬고 있습니다.
오늘 이 지역에 와서 새삼스럽게 남북관계, 평화 이런 것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우리나라가 분단만 안 됐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성대국이 됐을 것입니다. 인구가 8천만 가까이 되고 자원도 북에는 상당히 많이 있기 때문에 북의 자원과 남쪽의 경제력을 합치면 충분히 선진강국으로 갈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냉전으로 인해서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했던 한반도 평화체제, 동북아 평화체제를 만드는 일에 여러분과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해설자는 1904년에 만들어진 경의선은 열강의 각축 속에 일본이 제국주의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군사적인 목적으로 건설한 것이지만 이제는 우리나라가 경의선을 통해 주체적으로 북한과의 교류를 넘어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평화적으로 진출하는 비전을 갖게 됐다며 그러한 꿈을 실현하는 출발지로서 도라산역의 의의를 설명했습니다.

일행은 도라산역 옆에 노무현 대통령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조성한 평화의 동산에 들렀습니다.

평화의 동산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심은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일행은 서부전선 군사분계선 최북단 도라산 정상(해발 156m)에 자리 잡은 도라산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왕건에게 나라를 내 준 신라의 경순왕과 결혼한 왕건의 딸 낙랑공주가 남편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이 산에 암자를 지었고 경순왕이 자주 산에 올라 신라의 도읍(도라)을 생각한 데서 도라산이라는 이름이 연유한다고 전해집니다.

도라산 전망대에서는 포토라인이 있어서 그 밖에서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방문객들은 망원경을 통해 개성공단과 개성시 변두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 행선지는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임진강변에 위치한 누각인 화석정이었습니다. 율곡 이이의 5대 조부가 세웠던 것을 이이가 중수하여 여가가 날 때마다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이곳에서 제자들과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왜구의 침공에 대비해 10만양병설을 주장한 이이의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은 선조가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가면서 한밤중에 강을 건널 때 이 정자를 태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후에 복원된 정자는 6·25 때 다시 소실되었다가 1966년에 유림들이 복원하였고 1973년 정부가 실시한 율곡 선생 및 신사임당 유적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단장되었습니다.

이시우 해설자는 중국의 주자학이 철저한 봉건통치 사상을 펼친 데 반해 이이는 시의에 적절하지 않은 법은 고칠 수 있고 고쳐야 한다는 개혁적 생각을 가졌으며 백성의 말은 보잘 것 없고 좋지 않은 말이 많아도 내버려두고 죄를 묻지 말아야 한다는 언로개방 사상을 가지고 공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언로의 주체가 일반 민중임을 명확히 한 민중을 발견한 사상가였다고 평하였습니다.

화석정에서 임진강 건너편으로 동파리가 보이는데 미군 2사단의 사격훈련장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해설자는 이명박 정권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연기시키는 것은 그만큼 북한이 중국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며 주체적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설정하겠다는 노력의 포기를 뜻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일행이 다음으로 찾은 곳은 신라 56대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능이었습니다.

경순왕릉은 신라왕릉 중 유일하게 경주를 떠나있는 능으로서 경순왕이 개경에서 세상을 떠나자 이곳에 능이 마련되었고 오랫동안 잊혔다가 조선 영조 때 다소 찾게 되어 조선시대 전형적인 묘소의 격식으로 재정비되었습니다.

일행의 마지막 행선지는 호로고루성 터였습니다. 호로고루성은 임진강이 지류와 만나 형성하는 삼각형 대지 위에 조성된 성입니다. 사진 뒤쪽의 벽이 동벽이며 일행이 걷는 길이 북벽이고 오른쪽으로 남벽이 있고 북벽과 남벽에는 목책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삼각형 대지의 서쪽 끝에서 고랑포가 보입니다. 이곳은 임진강변에서 유일하게 걷거나 말을 타고 도강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에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했습니다. 6·25 전쟁 때는 북한군의 주력 전차부대가 개성을 지나 이곳에서 강을 건넜으며 김신조가 이곳을 건너 서울로 잠입을 하였습니다. 이곳은 한국전쟁 전까지는 임진강에서 가장 번성했던 포구였지만 지금은 사람의 흔적을 찾을 볼 수 없고 갈대숲만 무성합니다.

일행은 동벽에 올라 임진강 주변을 조망하였습니다.

일행은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임진강 평화여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도라산역 철로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시민들의 성금으로 마련한 침목들이 놓여 있고 침목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시민들의 소망을 표현한 도금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도금판은 현재의 남북관계를 상징하듯 철로는 녹이 슬어 있고 도금판의 도금은 벗겨지고 글씨들마저 지워지려 하고 있습니다. 민족 통일과 공영의 꿈을 담은 기차가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가기는커녕 가장 이웃한 북한의 개성역으로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시우 해설자는 아픔이 치유될 때까지는 신경이 아픈 곳에 집중되므로 몸의 중심은 아픈 곳이라고 할 수 있듯이 사회의 중심도 아픔과 고통이 있는 곳이며 세계의 중심도 전쟁, 기아, 빈곤 등이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런 아픔이 치유되기 전까지는 이 사회, 이 세계가 평화롭고 정의롭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가슴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래서 누군가의 아픔을 보고 지나치고 듣고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열린 가슴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국민을 탐욕추구의 수단과 권력 행사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정권이, 우리 사회의 아픔을 느낄 가슴을 가지지 못한 정권이, 입에 발린 소리와 눈속임 쇼나 하면서 진정으로 사회적 약자, 서민의 아픔을 아픔으로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에 걸린 정권이, 진정으로 분단의 아픔을 느낄 리 없으며, 선전용 구호로서 인권을 외칠 뿐 진정으로 북한주민의 아픔을 진정으로 느낄 리 없으며, 분단으로 인해 아픔을 겪는 국민들을 위해 진정으로 통일의 의지를 가질 리 없습니다.
아픔이 있는 곳에서 아픔을 느끼고 같이 하려 했던 따뜻한 가슴을 가진 지도자가 그립습니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국민의 아픔을 같이 하려 했던, 분단의 아픔을 느낄 줄 알고 그 아픔을 치유하려 했던 지도자가 그립습니다. 그는 비록 지금 없지만 그와 같은 꿈을 꾸는 국민들이 반드시 그의 꿈을 실현시킬 것입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한반도 전체가 비무장지대가 되고 경의선 열차는 힘차게 힘차게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할 것입니다.
비무장지대
문익환
비무장지대는 무기를 가지고는 못 들어가는 곳이라.
우리는 총을 버리고
군복을 벗고 들어간다
막걸리 통들만 둘러메고 들어간다
너희도 따발총 버리고
계급장 떼고 들어오너라
팔을 걷어붙이고 팔씨름이나 해볼까
모랫벌을 만나면 벌여볼까
멧돼지를 잡아라
바가지로 막걸리를 돌리며
멧돼지 고기를 뜯어라
여군들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오너라
40년 묵은 나뭇가지에
그네를 매줄 테니 힘을 겨루어라
날씬한 허리 용수철로 튀었다 펴며
푸른 하늘 밀어올려라
아아아아아 비무장지대
너희는 백두산까지 밀어붙여라
우리는 한라산까지 밀고 내려가리라
비무장지대 만세 만세 만세
에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