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 스나이퍼 / 2010-11-30)
이 글은 노무현 대통령의 19번째 질문, <성장과 복지 관계는?>에 대한 보충답변이다. 이 질문에 대해 김용익 서울대 의대 교수는 “동반성장과 사회투자전략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래서 사회투자전략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회투자전략으로 수립된 <비전 2030>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하고자 한다.
사회투자국가론
<사회투자 국가>라는 용어는 영국의 노동당 노선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앤서니 기든스이 1998년 발표한 <제3의 길>에서 처음 사용됐다. 그러나 이론적 기반은 스웨덴의 경제학자인 뮈르달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뮈르달은 1920년대에 이미 사회정책도 투자라는 개념을 제시한 학자다. 주로 미국 흑인들의 빈곤에 관한 문제를 연구했고 공교롭게도 1974년에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태두라 할 수 있는 하이에크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기도 했다.
<사회투자국가론>의 핵심은 종전의 ‘시혜적 복지’에서 탈피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물고기를 잡아서 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물고기를 잡아주면 그냥 물고기를 먹고 끝난다. 최저임금제나 최저생계비 같은 제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시혜적 복지제도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사회투자국가론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자는 것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면 그들 스스로 생존권을 유지할 수 있고 그리고 생존권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활동을 통해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에게 투자했던 세금은 납세를 통해 다시 국가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다.
이는 <성장과 분배>라는 개념이 대립적 관계에서 상호보완적 관계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복지정책과 경제정책이 하나의 패러다임 안에서 통합되는 것이다.
사회투자국가론은 그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서구 유럽사회의 경우 복지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재정 적자가 계속 늘어났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상징했던 복지제도는 어느 순간 <영국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물론 영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대처의 보수파 정권이 집권하면서 대대적인 복지축소로 이어지게 된다. 국가채무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사실 이런 보수파의 생각은 전적으로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국가의 재정 적자는 반드시 갚아야 할 빚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빚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현재의 세대가 만들어 낸 빚을 미처 갚지 못하고 넘어가면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갚아야 할 돈이 된다. 그리고 빚을 갚지 못하면 국가도 부도가 난다. 한국도 이미 경험한 바 있고, 세계 여러 나라들도 역사적으로 국가부도를 경험했다. 국가부도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한 가정이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할 경우 그 가족들이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국가부도가 전적으로 복지정책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유럽 사회가 복지제도를 확충하면서 국가재정에 문제가 발생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올해 발생한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의 남유럽과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의 국가부도나 위기 역시 복지제도가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결국 복지제도도 한 국가의 재정과 예산 범위 내에서 운용되는 것이다. 복지제도의 확충을 이야기할 때에는 국가의 전체 예산 규모를 생각해야 한다. 예산 총액에서 복지에 사용하는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사회적 기업>도 같은 비슷한 맥락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시장친화적인 복지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은 소수자-장애인-저소득층을 고용하여 이들의 경제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삶의 기반을 만들어주는 동시에, 여기서 발생한 이윤은 추가 고용에 사용한다. 투자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물론 최저의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최저임금제, 최저생계비, 노령연금 등 보편적 복지제도로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복지예산을 더 늘리고, 복지제도를 더 확충하기 위해서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라는 관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사회투자국가론이다.
세금 이야기
여기서 잠깐 세금 이야기를 하고 가야겠다. 복지제도를 확충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돈을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금을 올리는 것이고(증세), 또 다른 하나는 국가가 빚을 늘리는 것(국채 발행)이다.
국가 채무에 관해서는 앞에서 충분히 언급했고, 이제 세금만 이야기해보자. 미국의 대법관으로 존경을 받았던 올리버 홈즈는 “세금은 문명사회를 사는 대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세금 납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이건 어느 나라건 마찬가지다. 서구 유럽 사회에서 높은 세금을 부담하는 이유는 오랜 기간 동안 국가와 시민사회가 신뢰관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즉 정부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역사적으로 국가는 국민들 피땀을 갈취하는 조직폭력배나 다름없었다. 세금은 그 상징이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세금납부를 면제받는 특권층이었고 세금부담은 전적으로 상놈들의 몫이었다. 그러니 세금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국가와 시민 간의 신뢰관계 형성>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증세를 할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참여정부 당시 극소수의 상위 1% 부자들에게 부과한 종합부동산세에 대해서도 일반 시민들조차 부정적이었던 경험을 했다.
소위 ‘리얼 진보’에서는 복지를 제대로 안 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꾸준히 복지제도가 만들어지고, 제도화되고, 예산이 늘어난 것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절대적 기준(주로 서구 유럽)에 못 미치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정말 무책임한 태도들이다.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고찰이 전혀 안 된 관념적이고, 이념을 앞세운 교조주의적 주장이다. 왜 그런지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세금으로 가보자.
매년 언론에는 이런 보도가 나온다. “작년 1인당 세금납부액 338만 원… 사상 최고” 뭐 이런 식이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기사제목을 보면서 마치 자신들이 저렇게나 많은 세금을 납부한 냥 화를 내고, 분노하기도 한다. 그러나 <1인당 조세부담액>은 전체 세금을 국민들 숫자로 나눈 것일 뿐, 실제로 국민 1인당 그런 세금을 낸 것은 전혀 아니다. 이 숫자에는 세금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법인세>도 포함된 것이다. 일반 국민들이 법인세를 내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사실 1인당 평균 납부액을 계산하려면 적어도 법인세는 제외하고 계산해야 맞다.
일반 국민들이 납부하는 세금은 <소득세>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조세체계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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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것 같지만 복잡할 것도 없다. 일단 <간접세>는 제외하고 이야기하자. 간접세는 그야말로 우리가 각종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내는 세금이라서 소비를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 말이다. 일반 국민들이 내는 세금은 <소득세>가 거의 전부다. 나머지 <법인세, 상속세, 증여세, 부당이득세>는 낼 일이 거의 없다. 이 세금들은 기업이 내거나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다.
그렇다면 <소득세>는 어떤가? <소득세=종합소득세+근로소득세>다. 종합소득세는 주로 자영업자들이 내고 근로소득세는 직장인들이 낸다. 이 가운데 실제로 세금을 납부하는 사람은 전체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 절반 가운데서도 종합소득세는 상위 10%가 90%가 넘는 세금을 부담하고 있다. 근로소득세는 상위 10%가 75% 이상의 세금을 부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누진세>를 적용하기 때문에 소득이 올라갈수록 세금부담액이 커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는 소득이 많을수록 많은 세금을 내는 나라고 사실 세금을 많이 내는 부자들 입장에서는 불만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 우리나라 세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감세>를 하게 되면 이 사람들이 곧장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금 이야기가 나오면 실제로는 세금을 내지 않거나 조금 내거나 하는 사람들도 불만을 터트린다. 솔직히 말하면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부자들이 감세를 주장하고 세금에 불만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이런 불합리성이 감세정책을 뒷받침하고 있고 복지정책을 위한 재원마련을 힘들게 한다.
복지확대를 주장하는 진보진영이 생각해볼 문제는 또 있다. 복지제도는 헌법상 사회경제적 권리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복지권은 완전한 의미의 ‘권리’라고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복지제도를 늘리려면 어떤 형태로든 돈을 마련해야 한다. 그 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국가? 아니다. 실제로는 국가가 쓰고 있는 그 세금은 우리의 이웃들이 내는 돈이다.
그렇다면 복지제도를 화끈하게 확충하자는 사람들(리얼 진보)은 그 이웃들(부자들)에게 돈을 더 내라고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는가? 반대로 그 이웃들은 현재도 대부분의 세금을 부담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추가로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 어떤 ‘의무’를 갖고 있는가? 근거는 무엇인가? 만약 부자들뿐만 아니라 다수의 이웃들이 세금을 더 걷는 것에 반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설득할 자신은 있는가? ‘리얼 진보’의 주장은 도덕적 우월성은 갖고 있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설득이 안 되면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밀어붙일 힘은 갖고 있는가?
북유럽과 같은 보편적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복지정책을 평가하는 데 아주 인색하다. 한나라당과 다를 게 없다고 몰아붙이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물컵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김대중 대통령은 컵의 5/1 정도 물을 채웠다. 이미 그전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을 거치면서 양이 적기는 하지만 컵은 조금씩 채워왔다.
그러다가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물컵이 조금 더 많이 찼고 노무현 대통령이 물컵의 절반 정도는 채웠다. 이상적인 목표는 물컵을 완전히 채우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사회가 처한 현실(역학관계 등)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다.
그런데 반응은 세 가지로 갈린다.
“겨우 반밖에 안 되네. 그것도 복지라고, 한심하다.”
“휴, 빈 컵에서 이제 반은 찼구나. 마저 채울 수 있게 노력해야지.”
“뭐야. 반이나 찼네. 물이 왜 저렇게 많아. 좀 줄여”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일까?
비전 2030
2006년 1월 KDI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문가의 97% 일반 국민의 94%가 국가의 <장기비전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국민들은 바람직한 미래국가상으로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사회’(46.4%)와 ‘풍요롭고 안전한 사회’(26.7%)를 선택했으며 국민이 원하는 우선 해결과제로 노후생활보장(22.6%)과 고용안전(22.1%), 학교교육 정상화(12.7%)를 꼽았다.
솔직히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국가는 많은 세금을 필요로 한다. 국민들이 세금을 부담하지 않으면 국가 빚을 내야 한다. 어디선가 돈을 만들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솔직히 저 위의 설문조사에 나온 것과 같이 국가에 바라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 국민들이 스스로 세금을 부담할 용의가 얼마나 되는지 의심스럽다.
<사회투자국가론>을 사실상 국가비전으로 채택한 전략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비전2030은 증세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분위기에서 만들어낸 대안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증세를 논의해야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2006년 당시 규모의 국가재정에서 복지확대를 도모하자는 게 비전2030이다. 그래서 비전2030은 재정계획이다.
<비전 2030>은 좁게는 <복지 확충을 위한 장기 재정계획>이지만 크게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인적 투자 중심의 종합 미래 전략>으로 규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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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는 비전2030 재원계획이다. 이 계획을 수립한 것은 2006년 8월이다. 잠깐 도표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맨 아래 (ㄱ)은 2006년 당시의 복지지출 규모(GDP대비 8.6%)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를 말한다. 이 곡선이 우상향하는 것은 우리나라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그래서 2010년까지는 2006년 당시의 재정규모를 유지한 상태(추가적인 국채발행이나 증세 없이)에서 비전2030을 추진한다. 이 경우 세출구조조정이나 비과세-감면을 축소하고, 조세투명성을 제고하여 필요한 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ㄷ) 비전은 선제적 투자인데, 이것은 2011년부터는 추가로 재원을 조달하여 비전2030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지출을 늘리는 것을 말한다. 이때 재원조달은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국가채무로 충당하는 것이다. 둘째, 조세를 늘려서 충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국가채무와 조세로 나누어서 충당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 규모는 2030년까지 매년 GDP 대비 2% 정도의 추가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와있다.
맨 위의 점선 부분은 <제도혁신>을 통해 절감한 비용을 비전2030 비용으로 돌리는 경우를 말한다.
여기서 더 구체적으로 비전2030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 2006년 8월에 발표했을 당시 <세금폭탄>, <장밋빛 청사진> 등으로 온갖 매도를 당하고, 집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에서조차 채택하지 않았던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9년 발표된 뉴민주당 플랜에 어느 정도 채택됐다. 공식적으로 비전2030을 참고했다는 언급은 없지만 내용상으로는 그렇다)
그럼에도 비전2030을 소개한 것은 지금 진보진영에서 논의 중인 각종 복지논쟁에 비전2030을 참조하라는 의미에서다. 그리고 복지논쟁을 지켜보는 사람들 역시 비전2030이 어떤 의미와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논의 중인 복지논쟁은 비전2030을 뛰어넘는 전략을 만들기 힘들 것이라고 장담한다. 실현불가능한 주장들을 모두 폐기해버린다면 말이다.
사회투자국가론에 관하여는 다양한 논쟁이 있다. 다만 우려하는 것은 특정 이념의 틀로 ‘딱지 붙이기’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이념을 앞세우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삶, 그리고 우리 한국 사람들이 서 있는 위치와 현실을 분석하고 실현 가능한 정책을 만드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참고가 되길 바란다.
스나이퍼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fp_forum&uid=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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