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권력②> 대통령비서실과 국정과제위원회 2화
- 건국 이래 최초로 일상적 국정운영 위임, 대통령은 국가전략과제 집중
2003년 2월 27일 참여정부 초대 장관 인선 브리핑.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밝혔다.
“원칙적으로 장관이 권한과 책임을 갖고 일을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수석 시어머니’는 없습니다. 총리가 시어머니가 될 것입니다. 다만 국가전략적 과제라든가 미래 준비와 관련한 특별한 주제는, 대통령이 의욕을 갖고 해나가야 한다고 판단될 때는 바로 개입할 것입니다.”
참여정부는 청와대의 부처 전담 수석제를 폐지하고 참모조직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부처는 장관들이 주도하면서 국무총리와 협의하는 분권형 국정운영을 추구했다. 국무총리 역할이 실질적으로 대폭 강화됐다. 과거 권위주의시대의 ‘대독(代讀)총리’, ‘방탄총리’는 없었다. 참여정부는 헌법에 규정된 ‘행정각부 통할권’을 실제로 행사하는 ‘책임총리제’를 일관되게 실천했다. 참여정부는 헌법에 맞게 총리제를 운영한 최초의 정부였다.
고건 총리 초대 내각서 임명제청권 실제로 최초 행사
이미 2002년 대선에서 노 대통령은 책임총리제 시행을 약속했었다. 그리고 고건 초대 총리에게 각료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 등을 보장하면서 이를 실행에 옮겼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제1기 내각을 구성하기 전에 고건 총리와 2차례 이상 공식적으로 협의했다. 대통령 의지에 힘입어 총리도 각료 임명제청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했다. 고건 총리는 대통령 대신 인사위원회를 주재하며 농림부 장관으로 청와대가 추천한 민병채 전 양평군수 대신 허상만 순천대 교수를 추천했다. 고건 총리는 건국 이후 장관에 대한 임명제청권을 실제로 행사한 첫 총리가 됐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의 말이다.
“국무총리의 장관 제청권은 헌법에 규정돼있는 것이어서, 말하자면 그런 부분은 대통령이 법을 전공하신 분이라 굉장히 규범주의적인 판단을 갖고 계셨죠. 철저하게 존중하는 편이었죠. 처음부터 고건 총리의 제청권조차도 100% 다 받은 것입니다.”(문재인)
2004년 8월 10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지시는 더 구체화됐다. 각 부처에서 청와대에 보고할 때 해당 보고서를 총리실에도 같이 보내고, 국무회의 운영도 총리 중심으로 하고, 청와대는 대통령 관심사항, 대통령과제 중심으로 업무에 집중해달라는 것이었다. 이해찬 전 총리의 설명이다.
“처음부터 대통령의 뜻이 어떤 것이었냐 하면, 대통령한테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데, 대통령 혼자 끌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인식을 하고 계셨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규모라든가 여러 상황 때문에 지금 내각제로 가기 어려운 나라니까, 분권형 대통령제를 해서, 말하자면 ‘외교․안보와 중요 국정과제는 대통령이 하고 일상적인 정책과제는 총리가 하는 이른바 분권형 제도를 성공시키자’ 이런 생각을 하고 계셨거든요.”(이해찬)
이러한 역할 분담에 맞게 정책조정회의체계도 자리가 잡혔다.
“월요일 점심에 대통령과 총리가 조율을 해요. 그래서 수요일 국정현안조정회의를 보통 세 건 내지 네 건을 합니다. 그리고 토요일 당·정간에 비공식 8인회의를 하지요. 당하고 조정하는 겁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 전날 금요일까지 국무조정실이 차관회의를 합니다. 거기에서 대부분 정리가 되지요. 그 전에 심의관들이 1급 회의를 해요. 그러니까 1급 심의관회의를 하고 차관회의까지 해서 다 조정하고, 안 되는 것은 총리와 대통령이 판단해서 조정해주고, 그리고 당하고 협의하는 거죠. 이렇게 시스템을 짜서 총리실은 정책상황실을 만들었잖아요.”(이해찬)

“어느 총리나 다 힘이 셌다”
이처럼 총리는 매주 수요일 국정현안조정회의를 통해 내각 업무를 조정하고 실질적 내각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총리가 관장하는 국정현안조정회의는 2003년 5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162회에 걸쳐 총 532건의 안건을 논의했다. 특히,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 터널구간 공사, 외국인 고용허가제, NEIS 추진방안, 국민연기금운용체계 개편, 판교 신도시 내 학원단지 조성 등 사회적 갈등과제와 부처간 이견을 조율했다.
과거 정무장관이 맡았던 당․정 협조업무도 국무총리실에서 담당했다. 과거 정부에서는 청와대가 하던 역할을 총리실로 이관한 것이다. 더불어 2004년 5월에 청와대는 정무수석실을 폐지했다. 이는 여야가 원내정당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당·정 분리를 확고히 하고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참여정부 총리는 100% 다 자신의 뜻대로 권한을 행사했을까? 김병준 전 정책실장은 이런 질문이 가지는 잘못된 인식을 지적한다.
“만일 총리가 대통령의 정책적인 구상과 전혀 맞지 않는 일을 했을 경우, 대통령은 이를 시정할 것이며, 이런 일이 두 번만 발생하면 더 이상 총리직을 수행할 수 없을 겁니다. 책임총리제는 총리가 얼마만큼 대통령의 의지와 구상을 제대로 읽고 있느냐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 속에서 책임총리가 있는 것이지, 대통령의 의지나 큰 국정운영 프레임을 벗어나서 총리가 자기 마음대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김병준)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참여정부의 책임총리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체로 잘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의 의지를 총리에게 전달하는데 청와대 정책실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 과정에서 내부 토론과 조율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만큼 총리가 권한과 책임을 갖고 국정을 운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 그래도 참여정부 총리 가운데 이해찬 총리가 가장 힘을 셌던 거 아닐까?
“고건 총리 때는 그 체제가 정립이 잘 안 된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국정운영의 기본적인 전체 방향이 다 정리가 안 된 상태였고, 청와대 정책실도 아직 다 정리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총리도 조심스럽게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로드맵이 정확하게 만들어짐으로써 그 로드맵만 봐도 대통령이나 정부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확실해졌죠. 그리고 이해찬 총리 때부터는 소위 8인회의, 11인회의 같은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정무적인 일만 다루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정책적인 문제도 상당히 다루게 됩니다. 청와대 비서실장, 정책실장, 당 원내총무 등이 다 참석하는데 여기에서 대체적으로 의견을 대부분 조율하기 때문에 총리가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 저 양반은 세구나’ 이렇게 보는 것이지, 사실은 어느 총리나 다 마찬가지였습니다.”(김병준)

분권형 국정운영으로 ‘대통령과제’에 집중하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은 국가전략과제, 총리는 일상적 국정운영을 주도하는 역할분담이 이루어지면서 국정운영의 효율성은 더 높아졌다. 앞서, 참여정부 청와대 조직개편의 핵심이자 시스템 작동의 기본 구조였던 비서실, 정책실 운영사례를 돌아볼 때 책임총리제는 그 같은 운영시스템의 ‘정부 확장판’이다. 일상적인 국정운영을 책임총리와 장관에게 맡기면서 대통령은 지난 수십년간 필요성만 되뇌어져왔을 뿐 역대 어느 정부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묵은 과제, 장기적이고 넓은 시야에서 준비해야 할 국가 차원의 미래 과제 해결에 힘을 쏟을 수 있었다. 그것은 대통령과 청와대가 수행해야 할 본연의 과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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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권력> ② 대통령비서실과 국정과제위원회 └ 1화 - ‘군림하는 청와대’ 끝내고, 시스템·문화로 ‘2인자’ 없애다 |
<진보와 권력> ① 참여정부 지도제작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 2화 - 54일간 참여정부 5년의 ‘국정지도’를 만들다
└ 3화 - ‘노무현다운 시도’ 미완의 숙제를 남기다
└ 4화 - 이명박 정부식 조직개편은 인수위 때 ‘부적절’ 결론
└ 5화 - 노무현 대통령 취임, 참여정부 출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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