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양승호 감독을 만나다 (1) (2) - 양승호에 대한 오해와 진실 [펌]
롯데 양승호 감독을 만나다 (1) - 양승호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정보들이 여러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얼마나 왜곡,유추,단순화 되어 각각에게 전달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양승호가 도대체 누구야?”
롯데 새 감독 선임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22일, 대부분의 롯데 팬이 보인 반응은 위와 같았다. 신임 감독에 대해 알려진 바가 워낙 많지 않았던 탓이다. 고려대 감독으로 한때 LG에서 감독 대행을 지냈다는 것 정도. 좀 더 오래된 팬들은 그가 과거 한대화 한화 감독의 맞트레이드 상대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게 고작이다. 양승호 감독 스스로가 말하듯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낸 것도, 프로에서 지도자 생활을 계속 한 것도 아니기에” 팬들이 생소하게 느끼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무지는 흔히 선입견으로 이어지는 법. 여기에 로이스터 감독에 대한 그리움과 구단에 대한 원망이 겹치면서, 양승호 감독은 취임과 함께 롯데 팬들의 오해와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그가 스몰볼이나 수비훈련 강화 등을 내세울 때마다 팬들은 ‘로이스터 색깔 지우기’라며 항변했다. 심지어는 이대호나 손민한 등 중심 선수에 대한 언급조차 오해를 사기 일쑤였다.
하지만 양승호 감독을 아는 전문가들은 생각이 다르다. 한 야구해설가는 “롯데가 정말 좋은 감독을 뽑았다”며 “장기적으로 강팀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동명대 전용배 교수 역시 “감독 후보군 중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견해다. 그런가 하면 “기존 로이스터 색깔을 이어가면서 더욱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감독”이라는 야구인도 있다. 아는 이들과 모르는 이들 사이의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린다.
야구전문블로그 <야구라>는 지난 2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롯데 신임 양승호 감독과 만났다. 롯데 감독이 된 이후 쏟아진 갖은 오해에 대해 설명을 듣고, 앞으로 롯데를 이끌어갈 그의 비전에 대해 들어보기 위해서다. 이 인터뷰가 팬들이 양승호 감독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양승호 감독의 인터뷰는 ‘(1) 양승호에 대한 오해와 진실, (2) 지속 가능한 강팀을 위하여’로 두 편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3년 전에도 롯데로부터 감독 제의 있었는데 거절했었다"
"윤학길 수석 코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에 고생도 많이 해 봐서"
"강제가 아니라 자기가 필요한 연습을 알아서 하는 것이 자율야구"
"외야수 홍성흔? 본인이 의욕도 굉장히 강하고 반드시 기용할 생각"
"이대호, 3루 보면서 그만큼 방망이를 쳐준 것은 성격이 좋아서"
"전준우 3루수 전향은 본인 의사 물어보고 결정했다"
"야구 센스가 좋기 때문에 잘 해 낼 것. 대형 3루수 하나 탄생할 것"
"홍성흔 외야 수비, 기존 외야수들하고 큰 차이가 없다"
"스몰볼 비판, 1회부터 번트 대는 개념으로 여기니까 오해"
"번트 연습 시키지만 이대호 홍성흔에게는 번트 사인 안 낸다"
"손민한, 무리해서 기용 안하겠다고 했더니 자르는 것으로 오해"
"천천히 기다려줘서 양준혁처럼 곡향 팀에서 마지막을 장식했으면"
▶우선 감독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지난번 인터뷰를 북쪽 끝(고려대학교 송추 운동장)에서 했었는데, 이번에는 남쪽 끝(부산 사직야구장)에서 하게 됐네요. (웃음) 소감이 어떠세요.
뭐 소감이라고 하긴 그렇고, 아시다시피 한국시리즈 기간 중에도 롯데 감독건이 큰 화제거리였잖아요. 솔직히 저도 궁금했어요. ‘과연 누가 될까’ 하면서 나름대로 상상도 해보고. 그런데 그게 제가 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죠. 구단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전까지는 롯데 구단과 아무런 접촉도 없으셨던 건가요?
이런 건 있었어요. 8월 달에 연세대와의 정기전 앞두고 합숙하던 기간인데 롯데 배재후 단장이 직접 찾아왔어요. 왜 단장이 올까 의아하긴 했지만, 어쨌든 드래프트에서 우리 고려대 선수들 좀 많이 뽑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죠. 도중에 단장이 “롯데라는 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제가 외부에서 본 시각으로, 롯데의 강점과 아쉬운 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씀을 드렸어요. 아무래도 그때 한 얘기가 구단에서 생각하는 바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지 않았나, 지금 와서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랬군요. 과연 그 전까지 롯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셨는지가 궁금해지는데요?
하하. 일반적으로 감독이 경질되는 건 팀 성적이 나쁠 때, 꼴찌를 한다거나 7위를 했을 때 그만두곤 하잖아요. 그런데 롯데는 꾸준히 4위권 안에 들었던 팀이란 말이에요. 충분히 3~4위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는 팀이거든요. 그래서 속으로 ‘아, 누군지 몰라도 저 팀 감독을 맡는 사람은 참 행복한 감독이겠구나’하고 생각은 했었는데, 그게 저한테 돌아올 줄은 생각도 못했죠.
▶실은 롯데의 영입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던 것으로 압니다.
3년 전에도 한 번 있었죠. 그때는 여러 후보군 중에 한 사람으로 저울질을 하던 때인데, 제 쪽이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저는 안 됩니다. 다른 좋은 분들 알아보세요’ 하고 거절했죠. 당시 제가 고려대 감독 맡은 첫해였거든요. LG에서 계약기간 남은 상태에서 풀어줘서 어렵게 맡은 학교 감독직인데, 그걸 저 좋다고 1년 만에 그만둔다는 건 무책임한 일이이니까요.
▶일부에서 롯데가 전혀 모르는 사람을 급하게 감독으로 데려왔다고 오해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오래전부터 감독님의 야구철학이나 스타일 등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고 봐야겠군요.
그렇죠. 이미 3년 전부터 체크를 했으니까요. 이번에도 감독 제의를 받고 “저는 롯데에 아무 연고도 없는데 너무 모험하시는 것 아닙니까”라고 물었더니, 이미 8월부터 쭉 봐왔기 때문에 검토가 끝난 상태라고 하더군요. 이번엔 여러 후보들 놓고 저울질하는 것도 아니고 저만 오케이하면 된다고. 그래서 학교 측에 양해를 구한 뒤, 만나고 10분 만에 계약을 하게 됐어요.
▶실제로 롯데 선수들을 만나보니 밖에서 볼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밖에서는 롯데 선수들이 개성이 강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직 한 달밖에 안되긴 했지만, 직접 와서 가르쳐보니까 선수들이 다들 너무 착해요. 그런데 착하다 보니까, 한편으로는 불리한 점도 있는 거죠. 분위기 타면 쉽게 연승으로 가지만, 좋지 않을 때는 쉽게 포기하고 연패에 빠지고. 이게 한편으로는 선수 구성이 젊은 것도 한 가지 원인일 거예요. 지금 나이 많은 선수가 야수 중에는 홍성흔과 조성환, 투수는 임경완이나 손민한 정도니까. 나머지는 대부분 20대 중후반 선수들이거든요. 전체적으로 볼 때 기본 선수 구성 자체는 괜찮다고 봐요.
▶이제 화제를 롯데 코칭스태프 구성으로 옮겨 보겠습니다. 일각에서는 롯데 코치진 구성을 놓고 ‘감독보다 구단 의중이 반영된 인선이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감독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물론 외부에서 볼 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기존에 있던 코치들을 그대로 데리고 가니까 ‘저거 힘없는 감독 아니냐’고 자칫 오해할 수도 있는데, 이거는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릴게요. 처음 감독 계약하던 날에 구단 측과 코치 선임에 대해 얘기를 다 했어요. 코칭스태프 선임에 있어 감독에게 전권을 주기로, 구단에서 일절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거든요. 처음부터 그걸 조건으로 걸고 감독직을 수락한 거죠. 그리고 계약 후 5일 정도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코칭스태프를 어떻게 구성할지 머릿속으로 정말 온갖 그림을 다 그려봤어요. 저도 아는 코치들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참 생각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슨 의미이신지?
보세요. 롯데가 기존 코치진 중에 3명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상태잖아요. 그런데 롯데는 리빌딩을 하는 팀이 아니고, 이미 강팀인 상태에서 그 전력을 이어가야 하는 성격의 팀이란 말입니다. 가뜩이나 핵심 코치 셋이 빠졌는데 여기서 더 바뀌게 되면 선수들이 헷갈리고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안되겠다, 기존의 틀을 이어가야겠구나. 그래서 처음 만난 게 최기문이에요.
▶배터리 코치를 맡기셨죠.
그래요. 물론 주변에서는 코치경험이 없으니까 약하다고 할 수도 있죠. 저는 대신에 기문이한테 그랬어요. “네가 코치라고 생각하지 말고 포수 입장이라 생각해라. 포수라고 생각하고 후배들한테 가르쳐 주고 사인을 내줘라”하고 당부했죠. 그 뒤에 연락한 게 일본에 있던 조원우 코치에요. 연락해서 ‘지바롯데와는 어떻게 됐나’ 물었더니 아직 연락이 없어서 제가 불러주면 올 수 있다고 하더군요. 바로 들어오라고 했어요. 지바롯데에다 전화해서 ‘우리 팀이 좀 데려가겠습니다’ 했더니 그쪽에서 평가를 굉장히 좋게 해주더군요. 워낙 성실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해서 조원우에게는 외야 수비코치를 맡기게 됐어요.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군요. 하지만 투수 출신인 윤학길 코치에게 수석코치직을 맡긴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당초에는 윤 코치는 투수코치를 시키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도 있었어요. 그런데 다른 코치들 보직이 다 정해주고 나서 보니까, 수석할 사람이 없더군요. 그래서 생각했죠. 우리 팀이 투수가 약하니까, 투수 출신인 윤 코치를 수석을 시키면 어떨까. 또 부산지역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라는 점도 있고, 코치들이 전부 40대 내외로 젊은 편이니까 코치진을 잘 이끌어갈 거라고 판단했어요. 뭐 박정태 2군 감독 얘기도 하는데 수석을 하기에는 아직 너무 젊거든요. 1군에 박 감독 선배들이 여럿 있으니까. 그래서 윤 코치를 수석으로 부르게 됐어요. 여기저기서 고생을 많이 해봐서 그런지, 롯데 와서 아주 열심히 잘하고 있어요. 처음 코치직을 제의했을 때 ‘죽을 각오로 해보겠습니다’라고 하더라구요. 고생해본 사람은 달라요.
▶재활군은 SK에서 갓 은퇴한 가득염 코치에게 맡기셨는데요, 이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1, 2군 코치진 인선을 일단 마무리한 뒤에, 재활군은 좀 더 지켜보고 나서 정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마침 가득염이 은퇴한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잘됐다 싶어서 코치를 제의했죠. 마흔살 넘어서까지 투수로서 생활을 했다는 건,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그만큼 몸 관리 노하우가 있다는 얘기거든요. 그 점을 높게 평가한다면서 같이 일해보자고 했어요. 물론 당장 1, 2군 투수코치로 기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배터리 코치도 신임인데 투수코치까지 갓 은퇴한 이에게 맡기는 건 좀 무리라는 생각에 일단 재활군 코치를 맡기기로 한 거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전에 롯데에 굉장히 오래 있었더군요. 롯데 출신인줄 알고는 있었는데, 그렇게 오래 있었는지는 몰랐죠.
▶그렇다면 실질적인 ‘양승호 사단’은 최기문, 조원우, 가득염 코치라고 봐도 좋을까요.
아니, 무슨 내가 뽑은 코치들이 내 편을 들어주고 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에요. 솔직히 제가 뽑은 코치 아니라도, 저는 얼마든지 제 편으로 끌어들일 자신이 있어요. 코치 선임이 끝난 뒤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순리대로 가자, 절대 앞질러 가지 말자”라구요. 선배는 언젠가는 물러나게 되어 있고, 그러면 그 자리는 후배들에게 돌아가는 게 순리잖아요? 그런데 그간 야구판을 보면 언제부터 이렇게 의리가 없어졌는지 몰라도, 선배를 억지로 끌어내리고 그 자리 차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 중에 지금 잘 된 사람 누가 있습니까. 말로가 좋질 못하잖아요. 우리는 그러지 말고 하나로 똘똘 뭉치자고, 서로 대화로 해결하자고 분명하게 얘기했어요. 어떻게 보면 코치들에게 굉장히 강한 메시지를 준 거죠.
▶고려대 시절에도 감독님은 코칭스태프 및 선수들과의 대화를 매우 중시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 원칙은 두 가지에요. 하나는 감독에게 할 말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절대 선수가 듣는 앞에서 평가하는 말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쟤는 돼, 얘는 이래서 안돼 같은 말들. 그런 말은 감독실에 와서 저한테 직접 하라는 거죠. 다행히 현재까지는 코치들 모두가 아주 잘해주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이 아니에요. 지금이야 누구나 다 잘하는 게 당연하니까. 나중에 게임이 안 풀리면 그때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게 마련인데, 그럴 때는 감독인 내가 솔직해져야 돼요. 패인이 뭔지 의견을 나누고 감독의 게임운영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면 ‘내 잘못이다’ 인정하고 ‘내일은 더 잘해보자’고 팀원들을 독려해야죠. 제가 미처 생각 못했던 부분은 코치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하고. 그렇게 해야만 팀이 강해지는 겁니다.
▶주제를 좀 바꿔 보겠습니다. 전임 로이스터 감독 때와 비교해서 훈련량이 많아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감독님도 하실 말씀이 있을 것 같은데요.
글쎄 많이 시킨다는 얘기가 언론에서 나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아요. 지난 3년 동안 가을 훈련을 거의 안 하다가 이번에 처음 하니까 훈련량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거죠. 설사 많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갑자기 훈련량을 확 늘리면 선수들이 적응을 못하거든요. 그래서 훈련량을 천천히 올려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지금 체력훈련을 착실히 해둬야만 내년 스프링캠프와 시즌 초반을 무사히 넘길 수가 있어요. 제 견해로는 롯데가 더 치고 올라가려면 시즌 초반에도 어느 정도 성적을 낼 필요가 있거든요. 6월 전까지 5할 승부를 하는 것을 목표로, 거기에 맞춰 페이스를 조절하려고 해요.
▶사실 고려대학교에서도 훈련을 많이 시키는 편은 아니셨잖아요.
고려대에서는 선수들 무조건 오전 학교 수업을 들어가게 했으니까요. 하루 종일 훈련하는 건 정기전 합숙 때와 전지훈련 할 때, 그리고 4학년들 취업이 걸린 춘계리그 앞두고 정도가 전부였죠. 그 외에는 오전-오후 온종일 훈련해 본 적이 없어요. 왜냐. 대학교 4년 있는 동안 친구들도 만나고 즐겁게 생활하자는 거죠. 그 대신 너희가 진짜로 프로에 진출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다른 애들 노는 휴일이나 야간에도 따로 연습을 해야 한다. 이렇게 자율에 맡겨둔 거죠. 그러면 훈련할 애들은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해요. 하물며 지금 이 팀은 대학이 아니라 프로팀이란 말이에요. 학생이 아니라 자기가 야구를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직장이니까, 스스로가 연습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그런 게 진짜 자율야구잖아요. 시스템을 큰 틀에서 구축하고 그 안에서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게. 그런데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훈련량이 많으면 자율야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강제가 아니라 자기가 필요한 연습을 알아서 하는 거니까 자율적인 거죠. 지금 하는 연습이 무슨 단체로 펑고를 치고 기계처럼 움직이고 하는 이런 게 아니에요. 포수는 포수들이랑, 투수는 투수조, 내야수, 외야수 구분해서 각자의 분야별로 올 시즌에 부족했던 부분을 과외를 하는 거예요. 단체로 하는 훈련은 나중에 동계훈련 가서 본격적으로 하는 거지, 지금은 아니에요.
▶한편으로는 신임 감독이기 때문에 선수들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서도 지금 하는 훈련이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죠. 지금 같은 때 선수들 포지션을 미리 점검해둘 필요가 있어요. 가령 백업요원 같은 경우 유격수도 시켜보고, 2루나 3루도 시켜보고 어디에 넣는 게 좋을지를 살펴보는 거죠. 또 선수에게 말을 건넸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유심히 관찰하곤 해요. 성격이 내성적인지 외향적인지, 소심한지 아니면 적극적인지. 예를 들어 감독이 무슨 말을 했을 때 겁부터 먹는 친구는 성격이 소극적이란 얘기거든요. 이건 분명히 실전에 나갔을 때 플레이에서 나타나게 마련이에요. 속된 말로 새가슴이라는 건데, 이런 선수들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게 우선이죠.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선수의 가능성에 대해 속단하지 않는 겁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항상 선수들한테 얘기하는 게 “나는 열심히 하는 사람한테 기회를 준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반드시 기회는 돌아간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경쟁하게 마련이니까요. 기자들이 ‘점찍어둔 선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봐도 절대 이름 거론 안 하는 것도 그래서예요. 한 선수 이름 이야기 하면 거론 안 된 다른 선수들은 자칫 일찍부터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100%가 경쟁해야 할 판에 50%가 그렇게 떨어져 나가면 나머지 50%끼리만 싸운다는 거잖아요.
▶비슷한 맥락인데요, 올해 롯데의 경우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다소 크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감독님도 최우선 과제로 백업요원 발굴을 거론하셨는데요.
백업요원이 약하다는 건 그만큼 쓰는 선수만 썼다는 의미인데, 그렇게 되면 주전 한 명이 빠졌을 때 그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질 수 있어요. 저는 조성환이나 이대호가 133게임을 전부 뛸 거라는 계산으로 시즌을 준비하지는 않거든요. 적어도 2~3명 정도는 경기 후반이나 크게 지는 게임, 또는 주전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대신할 수 있는 선수가 있어야 돼요. 선수가 없는 게 아니에요. 정훈, 박진환, 문규현 등 충분히 좋은 친구들이 있는데, 단지 1군에서 뛰어 본 경험이 부족했단 거죠. 문규현 보세요. 박기혁 빠진 뒤에 문규현이 들어와서 수비가 안정되니까 팀이 크게 상승세를 탔잖아요?
▶어떤 면에서는 로스터를 보다 폭넓고 유연하게 활용하겠다는 말씀으로도 들리는데요, 홍성흔 선수에게 외야수비 훈련을 지시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보면 될까요.
왜냐면, 이대호가 전 경기 1루수로 출전하기를 요구하기는 힘들거든요. 어떤 날은 지명타자로 나가는 날도 있어야 체력 안배가 되죠. 그래서 홍성흔에게 수비 포지션이 필요한 거예요. 그러면 1루에 박종윤도 있으니까 세 선수를 돌아가며 가동하면 로스터 운영이 훨씬 쉬워지거든요. 문제는 홍성흔이 과연 외야가 되느냐 하는 점인데, 지금 본인이 의욕도 굉장히 강하고 저도 반드시 기용할 생각입니다. 물론 풀타임 외야수로 쓰겠다는 얘기는 아니고, 경기 상황에 따라 그에 맞게 기용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이대호 1루수 기용 방침은 확정된 것으로 봐도 되겠군요.
이대호가 올해 3루수로 좋은 활약을 한 건 사실이죠. 하지만 3루 보면서 그만큼 방망이를 쳐준 것은 이대호가 성격이 좋아서 그런 거예요. 어떻게 쳐요 그걸. 자기가 에러하고 잡을 수 있는 거 놓치고 하면 스트레스 받거든요. 그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올해는 3루에서 그렇게 해줬다는 거죠. 그러니까 1루수로 다시 옮기라고 해도 본인도 아무 말 안하잖아요. 참, 대호가 며칠 전에 광저우에서 금메달 땄다고 전화를 해왔어요. “감독님~ 저 금메달 땄습니다” 하고 자랑하길래, “수고했다. 후배들 데리고 고생 많았다”고 얘기해 줬죠.
▶결국 동계훈련과 시범경기를 치러봐야 백업요원이 누가 될지가 결정되겠네요.
제가 볼 때는 기존의 이대호, 조성환, 황재균, 전준우, 문규현에 추가로 두 명 정도가 더 필요해요. 1루는 어차피 이대호와 박종윤이 한다고 보면 나머지 세 자리가 한꺼번에 빠지더라도 다른 세 명이 들어가서 채울 수 있는, 그런 팀을 만들어야 강팀이 되는 것이죠. 그래야 한 시즌을 버티거든요. 아직은 그런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 마무리 훈련부터 최대한 만들어 봐야죠. 시범경기 때도 주전 9명 10명만 내보내는 게 아니라 테스트해봐야 하는 선수들을 최대한 기용하고, 거기서 잘하면 시즌 들어서도 초반 몇 달간 기회를 주고요.
▶사실 전준우 선수의 3루수 전향이 롯데 팬들 사이에서 굉장히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올해 중견수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를 굳이 3루로 기용하시려는 의중이 무엇인지 의아하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제가 선수단과 만난 첫날 물어봤어요. 전준우가 내야수를 볼 수 있느냐고. 대답이 “안되는 게 아니라, 잘 하는데 내야로는 안 썼다”고 하더군요. 제가 물어본 이유는 대학교 때 3루수 하는 걸 분명히 봤기 때문이에요. 꽤 훌륭한 3루수였거든요. 그래서 본인 의사를 물어보니까 본인도 3루가 하고 싶다는 거예요. 어느날 갑자기 중견수를 보라고 해서 처음에는 본인도 못한다고 했대요. 준우가 이대호와 박종윤을 살리기 위해 외야로 간 거지 3루 수비가 약해서 외야를 간 게 아니거든요. 첨에는 몇 번 외야에서 만세도 부르고 했다더만. 그런데도 중견수에서 그만큼 했다는 건, 기본적으로 야구 센스가 있는 친구란 말이죠. 만약 전준우가 3루수 자리에서 이겨만 낸다면, 우리 야구에 대형 3루수가 하나 탄생하는 거예요. 타격할 때 펀치력이 장난이 아닙디다.
▶비판하는 의견 중에는 3루 전향이 선수의 장점을 죽이는 결과를 낳지 않겠냐는 지적도 있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감독이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게 선수 본인에겐 손해라도, 팀에는 확실히 플러스가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준우가 외야에 있으면, 내야가 너무 허약해요. 백업이 당췌 없어요. 황재균이 3루, 문규현이 유격수 보면 백업을 3명을 찾아야 돼요. 그런데 준우가 3루가 되면 규현이가 백업이 되니까, 아니면 규현이가 유격수를 보고 재균이가 여러 포지션을 커버할 수도 있고. 또 외야에는 준우가 빠져도 그보다 더 발 빠른 선수를 쓸 수 있는 복안이 있단 말이죠. 그리고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포지션 이동 같은 건 선수 본인과 상의해서 그쪽이 납득 안하면 강제로 바꾸기가 힘들어요. 아마추어와 달리 프로는 본인 의사가 중요하거든요. 왜냐. 억지로 옮겼는데 결과가 나쁘면 본인에게 큰 타격이고, 결과적으로 트러블이 발생할 소지가 높으니까. 감독이야 3년 동안 성적 나쁘면 팀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선수는 계속 롯데 유니폼을 입어야 하잖아요? 선수 의사를 존중해야죠.
▶한 가지 의아한 점은, 백업 요원이 부족한데도 박진만 방출 당시 롯데만 유일하게 영입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아, 물론 박진만이 감독 입장에서 탐나는 선수이긴 하죠. 하지만 제가 필요한 건 고참으로서 백업 역할을 해줄 만한 선수거든요. 정말 어려운 상황일 때 내야 전 포지션을 다 해줄 수 있는 백업요원인데, 박진만을 데려와서 주전으로 내보내면 젊은 선수들이 그만큼 출전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그럼 그 선수들은 그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되고, 팀 분위기가 자칫 흐트러질 수 있거든요. 반대로 데려다 놓고 주전으로 안 쓰면, 그건 또 그것대로 선수가 불만을 가질 수가 있고. 만약에 그만한 선수를 영입한다면 지금이 아니라 7, 8월에 우리가 우승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됐을 때 해야죠. 정말 그럴 때 우승하기 위해 출혈을 감수하고 데려오면 모를까, 지금 영입해서 주전으로 쓴다는 건 아니라고 봤어요. 그런 식으로 하려면 박진만, 이혜천 죄다 데려다가 노장 팀 만들게요? (웃음)
▶사실 내야 백업요원 부재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롯데의 가장 큰 약점은 외야 수비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격을 강화하면 외야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그렇다고 수비 위주로 하면 방망이가 약해지는 게 지금까지 롯데 외야의 딜레마였는데요.
사실 외야 수비력이 가장 좋은 선수는 이승화예요. 그런데 올해 90타석밖에 출전을 못했거든요. 이런 친구가 방망이는 좀 약하더라도, 타율 2할 6~7푼에 좌중간 우중간으로 안타가 될 타구를 잡아주면 그게 팀에는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봐요. 어쨌든 내년에는 센터라인을 무조건 강하게 갈 생각이니까. 그리고 지금 홍성흔 외야 카드를 쉽게 생각하면 안돼요. 홍성흔이 수비를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코치한테 물어보면 기존 외야수들하고 큰 차이가 없다 이거에요. 그렇게 보면 손아섭이나 김주찬이 올해 성적에 만족할 게 아니라 좀 더 위기의식을 느낄 필요가 있어요.
▶외야 역시도 선수 활용 폭이 매우 넓어지겠군요.
김주찬이 좌익수로 가고 손아섭이 우익수로 갈 수도 있고, 왼손투수가 나오면 홍성흔이 좌익수, 김주찬이 우익수를 갈 수도 있죠. 손아섭은 우익수가 좀 더 편하다고 본인이 말하더군요. 그 외에도 이인구, 김문호, 박정준 등등 외야에 기용할 수 있는 자원은 얼마든지 있어요. 이 선수들 6명 정도가 서로 경쟁을 하게 만들겠다는 거죠.
▶지금까지 주로 수비력에 대한 고민을 말씀하셨지만, 사실 내년을 생각하면 롯데의 공격력도 아주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감독님 생각은 어떠세요.
주위에서 워낙 롯데 공격력이 강하다고 말을 하는데, 저는 지금 걱정하는 게 투수와 수비도 있지만 실제로는 공격을 제일 걱정을 해요. 왜냐. 투수나 수비는 문제점이 다 나온 상태니까 코치들이 알아서 달라붙거든요. 투수코치가 투수들 집중적으로 시키고, 수비코치도 두 명이서 강도 높게 시킨단 말이죠. 반면 타격은 지금 시기에 다소 안이하게 생각하는 선수들이 나올 수가 있어요. ‘내가 올해 이만큼 쳤으니까’라고 착각할 수 있는 거죠. 물론 홍성흔, 이대호 같은 선수들은 그래도 검증이 끝난 선수들이지만 전준우나 손아섭처럼 어린 선수들은 올해 잘했으니까 내년에도 잘한다는 보장이 없거든요. 그런 마음은 절대 금물이에요.
▶이제 화제를 돌려서, 취임 초기에 논란이 됐던 ‘스몰볼’에 대해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감독님, 과연 스몰볼이 뭘까요? 국내에서는 스몰볼에 대해 이상한 편견이 자리 잡고 있어서, 많은 이들이 한국식 번트야구를 스몰볼과 동의어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봐요. 스몰볼이라는 건 크게 보면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야구라고 생각하거든요. 가령 저쪽은 우리가 번트댈 거를 생각하고 수비가 앞으로 들어왔는데, 갑자기 타격을 해서 점수를 낸다거나. 이렇게 생각하는 야구를 하는 게 스몰볼의 큰 틀이라고 보는데, 이걸 무슨 맨날 번트대고 1회부터 보내기 하는 개념으로 여기다 보니까 오해가 빚어지는 것 같아요. 앞뒤 뚝 잘라서 그냥 스몰볼 하니까 팬들은 ‘롯데가 그동안 화끈한 공격야구를 했는데 반대로 가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데 그런 게 절대 아니죠. 말하자면 파워를 앞세운 야구를 하다가 경기 후반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는 번트나 스퀴즈 같은 작전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1점을 소중하게 여기는 야구를 하자는 그런 의미인 거죠. 번트만이 아니라 기동력도 스몰볼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거고, 방법은 다양하거든요.
▶스몰볼 하니까 심지어는 이대호도 번트대게 하는 게 아니냐는 분들도 있더군요. (웃음)
그리고 제가 타격코치한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앞으로는 선수들에게 번트 연습을 시키십시오. 다만 두 선수, 이대호나 홍성흔에게는 번트 사인을 안 내겠습니다. 대신 두 선수는 상황에 맞는 타격을, 가령 9회 무사 2루에서 나왔을 때는 우측으로 큰 타구를 보내는 식의 타격을 해야죠. 그렇게 주자 3루로 보내면 다음 타자는 스퀴즈를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런 게 스몰볼이라는 얘기에요.
▶스몰볼은 투수와 수비가 어느 정도 받쳐줘야 가능한 전략인데, 결국 수비훈련을 강조하시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야구는 수비가 강하면 공격력은 자동적으로 살아나게 되어 있거든요. 결국 공격력은 한계가 있다는 거예요. 아마 선수들도 그동안 피부로 많이 느꼈을 거예요. 시즌 후반에 홍성흔이 빠졌는데 팀은 연승을 달렸단 말이죠. 그 잘 치는 홍성흔이 빠졌어도 문규현이 들어가서 수비를 잘 해주면서 팀의 분위기 상승을 이뤄냈거든요. 그리고 사실 수비는 멘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투수들만 해도 심리적으로, 자기는 잘 던졌는데 타자들이 못 쳐서 졌을 때는 뭐라고 안 해요. 그냥 운이 없었나보다 하지. 그런데 잘 던지고 타자들도 잘 쳤는데 수비 실수로 대량실점해서 지면, 투수들의 분위기는 이루 말을 못하거든요. 야구를 흔히 투수놀음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투수도 디펜스의 일부기 때문에 디펜스가 강하면 마운드도 상승효과를 본다는 거죠.
▶난처한 질문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손민한 선수에 대해 언급하신 게 기사화되면서 롯데팬들 사이에서 크게 논란이 됐는데, 실제 오고 간 대화는 그게 아니잖아요.
민한이는 지금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저와 처음 면담할 때 몸 상태가 어떠냐고 했더니 ‘이제 30미터 던지는 단계입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민한아. 나는 지금 너를 기대하지 않는다. 너한테 10승 기대했다가 팀에 도움이 못 되면 너도 힘들어지고 팀도 망가지니까, 너도 무리해서 급하게 올라올 생각하지 마라. 1년 넘게 쉬었는데 천천히 몸 만들어서 후반기에라도 좋은 모습 보여줘야지. 내년이 FA 계약기간 끝나는 해 아니냐.’ 이런 내용으로 얘길 했어요. 그랬더니 손민한도 감사하다고, 치료 잘 받고 열심히 재활하겠다고 하고 면담을 마쳤어요. 그런데.
▶그 훈훈한 내용이 앞뒤를 잘라내면 전혀 다른 뉘앙스로 비춰지는 거죠. (웃음)
누가 물어보더라구요. 손민한 어떻게 할 거냐. 그래서 ‘올해 못 던졌으니까 나는 전력 외로 본다’라고 답했죠. 그랬더니 어떤 사람은 ‘아니, 그럼 자를 겁니까?’라고 묻더라고. 허허. 부상 선수는 팀 전력 구상에 포함시키지 않는 게 맞거든요. 그걸 계산에 넣으면 잘 안됐을 때 모든 구상이 어긋나는 건데. 나중에 민한이를 또 한 번 불러다 얘길 나눴어요. ‘민한아, 양준혁 은퇴식 보니까 멋지지 않더냐. 스타는 자기 고향 팀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게 가장 멋있는 거다. 구단과의 관계를 잘 가져갔으면 좋겠다.’ 그랬더니 민한이가 자기도 답답하다고, 하려고 하는데 몸 상태가 따라주지를 않아서 속상하다고 하더군요. 올해 같은 경우 본인은 재활을 하고 싶은데 계속 1군에 동행하게 한 것도 섭섭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저도 ‘이제는 너한테 달렸다. 고참으로서 책임감 갖고 재활 잘 하기 바란다’라고 하고 얘기 다 끝났어요.
(2편 “지속 가능한 강팀을 위하여”로 이어집니다)
진행-배지헌, 손윤 / 정리-이응수, 송승현, 배지헌
롯데 양승호 감독을 만나다 (2) - 지속 가능한 강팀을 위하여
'(1) 양승호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서 이어집니다.
☞ 양승호 인터뷰 1편 "스몰볼? 이대호 홍성흔은 번트 안 댄다" 다시 보기
"지금의 롯데 감독 자리는 독배 아니면 축배. 중간이 없다"
"롯데처럼 강한 팀을 맡아 한대화감독보다 운이 좋다는 거죠"
"감독 기회 매년 있었지만 좀 더 '복 있는' 데로 가기 위해 때를 기다렸다"
"3루수로 포지션 바꾸는 전준우, 고비 잘 넘겨줬으면"
"부산 사람들은 롯데 감독이라고 안 하고 ‘우리 감독’이라고 하대요"
"롯데가 계속해서 강한 전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떠나는 걸 목표"
"로이스터가 만들어 놓은 지금까지의 롯데와 반대로 가려는 것 아니다"
"더 강한 롯데를 만들고자 왔다. 올해보다 더 화끈한 야구 보여줄 생각"
▶지난달 취임식에서 “내년 시즌 우승이 목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통 신임 감독들이 ‘4강 진출’ 정도를 목표로 내거는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과감한 발언을 하신 셈인데요. 내년 롯데 우승, 정말 가능할까요? (웃음)
구단에서는 계약할 때 “3년 내에 우승을 목표로 해달라”고 했어요. 사실은 그게 제일 좋은 답이죠. 우승이 목표라고 했더니 사람들이 “초보 감독이 가능하겠냐”고 많이들 묻는데,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건 알죠. 보완해야 할 부분도 있고. 하지만 이런 게 있어요. 감독이라면 자신의 발언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줄 필요가 있거든요.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우리가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면 그게 팀 전체에 힘을 줄 수가 있어요. 그 자신감이 2프로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주고 없던 힘을 만들어내는 요인이 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사실 지금의 롯데 감독 자리는 독배 아니면 축배에요. 중간이 없어요.
▶맞는 말씀입니다. 롯데는 이제 4위만 해도 본전인 팀이 되어 있으니까요.
그렇죠. 이 팀의 상황이 4등 아래로 하면 독배고, 그 이상을 해야 축배를 든단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전임 감독보다 더 나은 성적을 내야할 책임을 갖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우승이라는 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삼성 김응룡 사장처럼 첫해부터 우승한 감독도 있지만 SK 김성근 감독 같은 경우 우승하는데 20년이 넘게 걸렸단 말이죠. 마음을 편하게 먹고, 생각을 단순하게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다보면 운이라는 게 따르면서 우승하기도 하고, 그런 게 야구죠. 어떻게 보면 롯데는 중간이 없으니까 오히려 감독하는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해요.
▶부담이 아니라 마음이 오히려 편하시다구요.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요.
과거에 제 트레이드 상대였던 한화 한대화 감독 얘길 해볼까요. 제가 취임한 다음에 한 감독에게서 축하 전화가 왔어요. “양 감독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농담조로 그랬죠. “한 감독, 복 있는 데를 찾아서 가야죠”라고. 무슨 의미냐. 사실 한화 같은 경우 객관적으로 볼 때 다시 강팀이 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한 상황이란 말이에요. 롯데랑은 다르죠. 롯데는 선수 구성원이 좋은 편에 속하니까. 하지만 성적이 안 나오면 두 팀 다 감독이 욕먹는 건 똑같아요. 성적 못내는 무능한 감독이라고 욕을 먹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면 어차피 성적 못 내면 무능한 감독이 되는 건 마찬가지라고 보면, 저는 롯데처럼 강한 팀을 맡게 되었으니까 훨씬 운이 좋다는 거죠. 저 같은 경우 매년 감독을 할 기회는 있었지만, 좀 더 ‘복 있는’ 데로 가기 위해 계속해서 때를 기다렸단 말이에요. 그런 면에서 롯데를 맡은 건 참 운이 좋은 거예요.
# 사도스키의 국내 무대 적응력, 높이 평가한다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야구계에서는 올 겨울에 롯데가 이전보다는 전력보강에 투자를 많이 할 것으로 보는 분위기인데, 트레이드 계획은 아직 없으신가요? 삼성 선동열 감독의 취임 첫해처럼 구단에서 큰 선물을 안겨주면 좋을텐데요. (웃음)
제가 구단 프런트 생활도 해봤지만, 트레이드라는 건 기본적으로 우리 쪽이 약간 손해를 본다고 생각해야 거래가 성사가 됩니다. 우리가 무조건 이익을 보겠다고 해갖고는 절대 성사되지를 않아요. 확실한 전력보강을 하려면 대가가 선수건 돈이건 어느 정도 출혈은 불가피하다는 거죠. 그리고 아까 박진만 얘기도 나왔지만, 좋은 선수를 데려오면 그 대신 같은 포지션의 다른 선수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여기 온 뒤 단장과 그런 얘기를 했어요. 적어도 11월까지는 트레이드나 선수 영입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제가 일단 팀을 구석구석 파악하는 게 먼저고, 어디가 취약 포지션인지 판단이 된 뒤에 그때 가서 생각을 해보자는 거죠. 감독 취임했으면 기존 선수들을 잘 가르치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게 우선인데, 그건 뒷전이고 이름 좀 있는 선수 끌어모으는데만 급급하면 팀분위기는 분위기대로 흐트러지고, 평균 연령대도 높아지고, 부작용이 많아요. 선수 영입해서 우승한다는 보장이 있다면 모를까. 그런데 그건 적어도 8월은 되어야 알 수 있다는 얘기죠.
▶그러면 외국인 선수 영입은 어떻게 될까요. 팬들 사이에는 올해 좋은 활약을 한 라이언 사도스키의 재계약 여부가 관심사이던데.
사도스키가 올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선수 20명 중에 앞에서 세 번째라고 하더군요. 제가 보고받은 바로는 굉장히 한국 적응을 잘한 케이스에요. 거기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고 있어요. 외국인 선수는 기량을 떠나 일단 본인이 한국문화와 야구 스타일의 차이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관건이거든요. 아무리 미국에서 잘했거나 돈을 많이 받고 온 선수라도 실패하는 게 그 때문이에요.
▶과거 두산 프런트 시절 뽑은 외국인 선수들이 그런 경우였죠. 기량도 좋았지만, 그에 앞서 인성이나 한국 적응 능력이 무척 뛰어났던.
지금도 기억나는 선수가 홈런왕까지 했던 타이론 우즈에요. 원래 그해 외국인 선수 선발에서 1순위는 케세레스였고, 우즈는 2순위였어요. 하지만 실제 성공한 건 우즈였는데, 그건 결국 구단에서 기회를 많이 주고 좀 부진해도 참고 기다려준 덕분입니다. 그렇게 삼진을 당하는데도 계속 기회를 줬거든요. 외국인 선수한테는 적응할 때까지 어느 정도 기다려줄 필요가 있어요. 본인이 성격이 못되고 그러면 할 수 없지만, 착하고 열심히 하는 선수라면 적응할 시간은 줘야 한다. 그러면 막판에 몰아치기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게 외국인 선수거든요. 사실 일년 내내 한결같이 잘하는 선수가 몇이나 있겠어요. 아직까지 한국 야구가 그런 면에서 좀 아쉬운 부분이 있죠.
▶그렇다면 가까운 일본에서 외국인 선수를 찾는 것도 한 방법이겠군요.
아, 그래서 일본에서도 외국인 선수를 트라이 아웃할 예정이에요. 얼마 전에도 윤학길 코치가 자매구단인 지바롯데 마린스에 한번 다녀왔고, 수일 내로 우리 코치들을 후쿠오카 쪽에 보내려고 하고 있어요. 왜냐면 일본 선수들은 문화가 비슷해서 미국쪽 선수들보다 적응이 빠르거든요. 가토쿠라 같은 경우도 그런 케이스구요. 갖고 있는 자료와 비디오 테이프 보고 검토해서 트라이 아웃 해보고서 결정을 해야죠. 거기서 마음에 안들면 미국이나 도미니카로 넘어가야지 뭐. (웃음) 구단에서도 이제 팬들이 가을야구만 갖고는 만족 못한다는 걸 알아서 그런지, 투자를 많이 하려고 하고 있어요.
▶항간에는 외국인 투수 중 하나는 마무리로 선발하지 않겠냐는 예상도 나오던데요, 감독님 생각은 어떠세요.
현재로서는 보직을 정해놓고 뽑거나 할 생각은 없어요. 생각을 해보자는 거죠. 미국에서 마무리하던 선수가 한국에 오겠어요? 거기서 선발을 뛰었든, 중간이나 마무리를 했든 크게 고려할 사항은 아니에요. 일단은 국내 선수들하고 같이 연습을 시켜서 경쟁에서 살아남는 선수를 그에 맞는 보직에 기용하는 거죠. 미국 트리플A에서 중간계투로 잘 던졌던 선수가 한국 와서는 선발투수 할 수도 있는 거구요. 이번에 일본시리즈에서 롯데 우승시킨 외국인 투수(머피)도 원래는 중간 투수였는데 선발로 가서 10승 이상을 해냈잖아요. 로페즈도 그렇고.
▶그럼 마무리 투수는 아무래도 국내 선수 중에서 찾아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데요.
그렇다고 봐야죠. 다만 올해 선발로 뛴 선수들은 갑자기 마무리로 가기가 힘들어요. 중간계투로 했던 선수들 쪽이 구원으로 위기에서 나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중간에서 괜찮은 선수들 중에서 체크를 해봐야 돼요. 작년 같은 경우 임경완과 이정훈이 있었는데 그 선수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고. 또 외국인도 테스트해봐서 마무리감이라는 확신을 주면 쓸 수도 있고. 최종적으로는 두 명 정도를 후보로 압축해서 시범경기까지 운영해보고 제일 나은 선수에게 맡겨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4월 거쳐 5, 6월 정도까지 어느 정도 그 선수가 해준다면 마무리 쪽은 형성이 되지 않겠느냐. 그런데 사실 장기적으로 보면 마무리투수는 팀내에서 키워내야 해요. 팀의 젊은 선수 중에 볼 빠른 친구들이 꽤 있거든요.
▶하지만 국내 프로야구를 보면 갓 고등학교 졸업한 어린 선수들에게 처음부터 마무리라는 무거운 짐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서, 한편으론 걱정도 됩니다. 실제로 데뷔 초부터 마무리로 뛴 선수 중에 정신적 부담감을 못 이겨 무너지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었는데요.
단계를 거쳐야죠. 가능성 있는 젊은 투수는 일단 패전처리나 롱릴리프로 기회를 줘서 계속 경험을 쌓게 하는 거죠. 거기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으면 이제 불펜의 필승조로 들어가고, 그러다 마무리도 될 수 있는 거구요. 오승환도 데뷔하자마자 마무리를 한 게 아니거든요. 처음에는 중간이나 셋업으로 나왔잖아요. 사실 어느 정도 검증된 마무리 투수들은 대부분 그런 과정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마무리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아무튼 팀이 강해지려면 마무리 부분은 속히 해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올해의 경우 팀에 마무리가 부재다 보니 투수들 전체적인 자신감에까지 악영향이 있었어요.
# 불펜 투수들에게 확실한 역할을 부여하겠다
▶롯데의 최대 약점은 역시 불펜이 약하다는 것일텐데요. 한편으로는 선발진과 대조되면서 불펜의 약점이 더 부각되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마무리가 약하다 뿐이지 다른 불펜진은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거든요.
롯데에 온 뒤에 올 시즌 133경기의 게임로그를 하나하나 다 살펴봤어요. 그런데 이런 게 있어요. 불펜 투수들은 각자에게 분명한 임무가 주어질 필요가 있거든요. 이기는 상황에서 나가는 필승조가 있을 테고, 또 지고 있을 때 나가는 두 번째 투수조가 있고. 그런데 올해 같은 경우에는 불펜에 그런 개념이 다소 희미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임경완, 강영식, 배장호, 이정훈 등의 기용을 보면 어떤 날은 1점차로 이기는 상황에서 나가고, 다른 날은 지고 있을 때 나가고, 이러면 투수가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거죠. 자기가 어떤 상황에서 나가게 될지 알아야 투수가 준비를 하고 상대에 대해 공부를 하고 나가서 던질 수 있거든요. 그렇게 마음을 먹고 마운드에 올라가는 것과, 아무 역할 없이 무조건 ‘너 나가서 던져’ 하는 것과는 투수의 준비자세부터가 달라요. 확실한 역할 분담을 해줘야 그나마 불펜 기용이 성공할 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거죠. 그런 게 좀 아쉬운 부분이고, 또 하나는.
▶어떤 게 있을까요.
롯데가 투수 자원은 나쁘지 않은데 너무 쓰는 선수만 쓴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항상 나와서 던지는 선수들이 한정되어 있고 변화가 없으니까, 출전 기회가 없는 투수들은 의욕이 저하되는 면이 있어요. 또 선수들 입장에서는 개인 성적 같은 것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거든. 자주 나와서 던지고 홀드라도 좀 쌓고 해야 하는데, 영 기회가 없으니까 사기가 떨어지고 위기상황에 올라와서도 막아낼 수 있는 힘이 떨어지게 되는 거죠. 롯데가 선발진이 강하다고 하지만, 사실 중간에서 몇 경기만 막아줬으면 더 많은 승을 따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현재는 시범경기 전까지 중간계투진에 필승조를 세 명 정도 만드는 걸 목표로 잡고 있어요.
▶방금 롯데가 선발진이 강하다고 말씀하셨지만, 내년 전망만을 놓고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은 선발투수진 구성도 굉장히 고민이 되실 것 같은데요.
강하지 않죠. 주위에서 강하다고 하는 건 손민한, 특급 외국인 투수 다 있을 때 얘기죠. 지금 현재로선 선발투수가 확실한 선수가 송승준과 장원준 외에는 없다고 봐야 하거든요. 뭐 사도스키가 될지 누굴지는 아직 모르지만 외국인 투수 하나를 선발로 쓴다고 보면 남는 건 이재곤과 김수완인데, 두 선수가 올해 잘했지만 내년에 어떨지는 알 수 없는 거잖아요. 타자 쪽의 전준우, 손아섭과 상황이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볼 때 타선에서는 전준우와 손아섭, 선발쪽은 이재곤과 김수완을 한 쌍으로 볼 때 둘 중 한 명이라도 올해보다 잘해주면 다행일 거 같아요. 그럼 본전치기는 되잖아요. 죄다 올해보다 못하면? 그럼 독배 마시는 거죠. (웃음)
▶1라운드에서 뽑은 신인투수 김명성(중앙대 졸업)은 어떻게 보세요.
제가 볼 때 그 정도 실력이면 프로 1군에서도 가능성이 있어요. 패전처리부터 하든 중간계투를 하든, 1군에서 통할 거 같아요. 그리고 그런 선수는 팀에서 키워야 해요. 병역 면제도 받았지, 제가 있는 동안에 안되더라도 나중을 위해서라도 키워줘야 돼요. 왜냐. 일단 올해 그렇게 많은 투구를 했는데도 아픈 근육이 없어요. 근력테스트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더라고.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며칠 전에 아시안게임 우승하고 버스 이동하면서 이대호랑 강민호, 김명성이한테 전화가 왔었어요. 명성이가 금메달 땄다고 자랑하길래 제가 그랬죠. “임마, 너는 한국 오자마자 훈련부터 합류해.” 하하.
▶국가대표팀 사령탑 맡으셨을 때 여러 번 데리고 가셨었죠?
제가 두 번을 국제대회에 데리고 갔는데, 정말 열심히 하고 성격이 착해요. 어느 정도냐면, 대표팀을 가면 아마추어는 빨래를 말려서 한 방에다 모아놓거든요. 그런데 명성이는 자기가 알아서 그걸 다른 선수들 방에다 가져다 주고 있더라구요. 그걸 보고 ‘아, 애가 괜찮구나’하고 생각을 했었죠. 그리고 몸쪽을 던질 줄 아니까, 변화구 하나만 잘 가다듬으면 괜찮을 거 같아요. 처음에는 롱릴리프 정도로 던지다가 거기서 자신감 얻으면 필승조로 들어갈 수도 있고. 그런 생각지도 못한 선수들이 잘 던져주면, 감독 입장에선 정말 운이 좋은 거죠. 그리고 요즘 야구는 중간에서도 패전투수, 이닝을 길게 끌어주는 투수들의 역할이 중요해요. 133경기를 치르려면 투수력 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최근 프로야구는 선발투수의 개념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초반에 실점하면 바로 중간계투를 투입하기가 다반사라서. 반면 롯데는 가급적 선발을 길게 끌고가는 팀에 속했는데, 감독님은 어떠실지 궁금합니다.
코치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어요. 선발투수가 1~2회밖에 안됐는데 4점 5점씩 내줬다. 팀 전체가 맥이 빠지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겨우 2~30개밖에 안 던진 투수를 일찌감치 마운드에서 내린다? 저는 그렇게는 안 한다는 거죠. 선발은 아무리 점수를 줘도 최소 70개 투구까지는 던지게 하겠다. 그래야 그 다음 시합이 편해지니까요. 저는 당장에 1패를 하더라도 선발투수가 초반에 실점하고 나서 성의 없이 던지는 모습을 보이면, 무조건 2군 보낸다고 못박았어요. 엔트리에서 빠지는 건 한 명이지만, 그 하나가 빠짐으로 해서 다른 투수들이 느끼거든요. 이거 대충 해서는 안되겠구나 하고. 선발은 점수를 주더라도 최선을 다해 던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돼요. 그러다보면 타선이 터져서 점수를 만회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근데 초반에 점수주고 포기해 버리면, 그 담에는 걷잡을 수가 없게 돼요. 그건 용납 못한다는 거죠. 선발은 다른 투수보다 혜택받은 존재니까, 그만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포수는 아무래도 강민호가 계속해서 주전으로 가겠죠?
음, 그런데 제가 볼 때 내년에는 장성우도 많이 나와야 할 것 같아요. 강민호도 매우 좋은 선수지만,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는 건 금물이예요. 장성우가 수비력 면에서는 더 나은 부분도 있거든요. 사실 포수 쪽에서 걱정되는 건 1군 기용 가능한 포수가 세 명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두 명으로 시즌을 치르려면 한 명이라도 아파버리면 큰일나거든요. 쓰는 선수는 두 명이라도, 한 명이 추가로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최기문 코치에게 올 겨울에 어떻게든 포수 한 명을 더 만들어 달라고 당부를 했어요.
▶앞서 드리려던 질문인데요, 아무래도 내년 롯데의 최고 승부수는 전준우의 3루 기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카드가 성공하면 내야 백업요원 문제는 물론 외야 교통정리까지 한 번에 해결되니까요. 반면 실패할 경우 시즌 구상 전체가 헝클어지는 결과가 예상되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글쎄요, 본인도 한 번 정도 고비가 오기는 할 거예요. 근데 그게 수비 부담 때문은 아닐 거예요. 원래 대학 때 좋은 3루수였고, 수비가 안 돼서 외야로 옮긴 게 아니거든요. 문제는 자기가 올해 외야에서 타격 성적이 좋았는데, 내야로 돌아온 뒤 방망이가 안 맞으면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거든요. ‘아, 괜히 내야로 옮겨서 방망이가 안 맞는 거 아닌가?’ 사실 그런 상황이 되면,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할 거예요. 하지만 그런 고비를 이겨내야만, 전준우가 큰 선수가 될 수 있어요. 앞으로 롯데를 이끌어갈 차세대 스타라면 그걸 극복해야 되거든요. 아무튼 슬럼프가 한 번은 오긴 올 텐데, 만일 그게 시즌 초반에 와버리면 좀 힘들어지는 게 사실이죠. 우리가 겨울 동안 실컷 연습해둔 포메이션이 있는데, 그걸 못 쓰게 되는 거니까요. 준우가 포지션 변경에 수반되게 마련인 고비를 잘 이겨냈으면 좋겠고, 또 고비가 오더라도 가급적이면 6월 이후에 왔으면 좋겠어요.
# 전력분석, 트레이너, 2군 운영 계획
▶이제 선수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된 듯하니까, 다른 파트에 관한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올 시즌까지 롯데는 다른 구단에 비해 전력분석이 다소 약하다는 평가를 듣곤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 복안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주위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 제가 볼 때는 전력분석이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서 현장에서 얼마나 활용을 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기껏 분석해 놔도 선수들이 활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거든요. 제가 롯데 전력분석실에 가봤는데, 시설을 잘 만들어 놨더라구요. 특히 비디오 분석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잘 활용하면 많은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윤학길 수석코치에게 홈경기 때 운동장 나가기 20분전에는 항상 그날 상대할 투수에 대한 분석을 하도록 당부했어요. 그리고 구단에도 따로 부탁한 게, 전력분석팀이 그동안은 다음 3연전 상대팀만 미리 살펴봤는데 그러면 상대 타자밖에는 분석을 못 하거든요. 그래서 6연전을 보게 하라고, 그래야 우리와 상대할 투수까지 살펴볼 수 있다고 얘기해 뒀어요.
▶전력분석과 함께 트레이너를 강화하겠다는 발언도 하셨습니다.
트레이너가 강한 팀이 대표적인 예가 두산이예요. 일단 정식직원인데다 직급도 있고, 팀 회의에서도 트레이너가 발언권이 있어요. 그러면 힘이 강해지거든요. 선수 중에 누가 놀다가 다치고 들어와서 치료 제대로 안 받아도 바로 운영팀에 보고가 들어가거든요. 반면에 트레이너가 힘이 약하면 선수가 술 먹고 뻗어서 ‘아프다고 하고 마사지나 좀 해줘요’ 해도 해달라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롯데가 이전까지는 트레이너가 팀에서 아무 발언권이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여기 온 뒤에 트레이너 실장을 따로 불러 얘기를 했어요.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사실 제가 감독 입장에서 월급을 올려주고 할 능력은 없어요. 대신 회사에 얘기해서 당신들의 복리후생을 지금보다 향상시켜 주겠다. 그리고 시합 전에 미팅에 참석하게 하겠다. 선수가 출전할 수 있는 몸 상태인지 여부에 대해 항상 트레이너들의 의견을 듣겠다. 당신들이 안 된다고 하면 그 선수는 내가 안 쓰겠다. 그런 약속을 했어요. 대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도 했죠.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신이 났어요. 만날 선수들 마사지만 하다가 이제는 일할 맛이 난다는 거죠. 그리고 구단 측에는 트레이너들 사기 진작 차원에서 처우를 좀 높여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트레이너들이 야구인 출신 아니라고 기를 꺾지 말고 대우를 해 줘라, 트레이너 역할이 때로는 코치 한 사람 역할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다행히 장병수 사장은 트레이너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있더군요.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더군요. “트레이너가 잘 해서 일주일 쉬어야 할 선수가 2~3일만 쉬고 시합에 나갈 수 있다면 팀에 얼마나 플러스가 되겠냐”고, “실력있는 트레이너라면 돈을 더 주고라도 스카우트하고 싶다”고 하셨으니까 그 부분은 앞으로 잘 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른 구단들의 예를 보면 현장에서 트레이너의 발언권이 강해지는 걸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경우도 많던데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감독이 힘을 실어주면 돼요. 사실 제일 성적에 목을 매는 건 감독인 저 아니겠어요. 한 게임 쉴 거를 잘못해서 일주일 이상 쉬게 되면 선수도 손해지만, 무엇보다 저한테도 큰 손해잖아요. 성적 나쁘면 바로 아웃인데. 트레이너 문제는 코치들이 아니라 감독이 무시해서 그렇게 되는 거예요. 트레이너가 “이 선수 오늘 안되겠는데요” 했을 때 감독이 “뭐라고? 그냥 뛰라고 해” 하고 묵살하니까 코치들도 따라서 트레이너 말을 무시하게 되거든요. 감독이 힘을 실어주면 잘 될 거라고 봐요. 그 대신에 트레이너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했을 때, 그 때는 책임을 묻겠다는 거죠.
▶그런 기준은 코칭스태프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겠군요.
그래요. 코치들에게도 각자의 분야별로 권한을 확실하게 나눠줬어요. 가령 공필성 코치는 사인을 확실하게 내도록, 최기문 코치는 볼배합을 확실하게 해주라고, 코치들에게 권한을 줘요. 다만 권한을 주는 대신에 그만큼 책임도 따른다는 거죠. 자기가 맡은 선수가 계속 실책하는데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똑같은 연습만 한다면, 그건 코치가 아니라는 거죠. 실수가 잦으면 조금 일찍 불러서 따로 그에 맞는 연습도 시키고 해야 코치죠. 꼭 연습을 해서만 나아지는 건 아니거든요. 그보다는 선수에게 어떤 정신적인 무장을 시키는 측면도 있어서 따로 과외를 하는 것이거든요. 그것조차도 안하는 코치는 그저 세월아 네월아 하고 월급만 받겠다는 거죠.
▶아무래도 오랜 프런트 경험 덕분인지, 선수들이나 코치들을 다루는 조직 관리 노하우가 남다르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런트도 했고 코치도 겸직하고 해서 프로구단이 돌아가는 사정을 어느 정도 알죠. 사실 팀이 잘 되려면 감독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조직이 받쳐줘야 하고 사람들이 잘 도와줘야 가능해요. 아까 말한 트레이너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동기부여만 되면 자동적으로 열심히 하게 되어 있어요. 특히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감독이 한 번 챙겨주면 더 신이 나서 열심히 해요. 그리고 코치들에게는 건의사항 있을 때 즉시 저한테 얘기하고, 코치들끼리도 대화를 많이 하라고 권유해요. 코치끼리 대화가 필요한 건, 서로 간섭을 하자는 게 아니라 도움이 되기 위해서예요. 모두 오픈해 놓고 들어주고 대화를 해라. 대신 타협점이 도저히 없으면 저한테 오라고 했어요. 그러면 가부간에 결정을 내리겠다고. 대신 코치들끼리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고 그 결과를 가져오면 저는 가급적 그 뜻을 따르겠다고 약속했어요. 무조건 일방적인 관계로 가지는 않겠다는 얘기죠.
▶선수들 사생활 문제는 고려대 계실 때와 마찬가지 원칙이라고 보면 될까요?
자율이죠. 자율이라는 건 너희들 스스로에게 맡기지만, 대신 일정한 룰은 지켜야 한다는 얘기죠. 늦게까지 폭음을 한다든지, 숙소를 이탈한다든지, 다음날 게임에 해를 끼치는 행동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게 제 원칙이예요.
▶앞으로는 2군과 1군의 관계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생각하시는 바가 궁금합니다.
안 그래도 며칠 전 박정태 2군 감독과 미팅을 했어요. 앞으로 박 감독은 1군이 홈경기 할 때는 어디 나가있지 않은 이상 무조건 와서 보라고 당부했어요. 그리고 보고 난 뒤 1군에서 출전한 선수보다 더 좋은 선수가 2군에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했죠. 추천한 선수는 1군에 빈자리 생기면 바로 올려서 출전 기회를 줄 생각이에요. 이제까지 2군 시스템에서 아쉬운 게 뭐냐면, 2군에서 일껏 선수를 잘 만들어서 최상의 컨디션에서 1군으로 올려 보내도 정작 와서는 벤치에 앉아있어야 했다는 거예요. 한창 좋을 때 올라와서 그게 뭐하는 거예요. 그런 얘기를 박정태 감독하고 긴히 나눴어요. 대신 추천할 때는 그만큼 2군 감독 입장에서도 신중하게 해야 되겠죠. 그리고 2군 감독이 올 때 가득염 재활군 코치도 같이 와서 보라고 했어요. 제일 최근에 선수생활을 그만둔 사람이니까, 경기를 보면 선수들의 장단점이 금방 파악이 가능하거든요. 그걸 다른 코칭스태프한테 조언을 해달라는 거죠.
▶프로야구 2군을 보면 어떤 팀은 선수 육성에 방점을 두는 반면에, 2군 리그 우승이 목표인 것처럼 보이는 팀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어떤 쪽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세요. 답은 예상하고 있습니다만... (웃음)
저는 성적은 절대 아니라고 봐요. 2군은 막말로 꼴찌해도 상관없어요. 그거 1등해서 무슨 소용이예요. 투수 시스템도 1군하고 똑같이 가라고 했어요. 선발로 쓸 선수는 거기서도 선발로 쓰라는 거예요. 2군에서는 선발로 키울 선수는 120개 던져도 상관없어요. 어린 선수들은 많이 던지면 던질수록 좋아지니까. 다만 그렇게 던진 뒤에 그 다음날 중간계투로 다시 내고, 그렇게는 절대 하지 말라는 거죠. 선발과 중간계투를 구분을 확실히 지어서 기용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두 명 정도는 마무리로 생각하고 육성을 해보라고 얘기를 해뒀어요. 한 명이 오늘 마무리하면, 다음 경기에서는 중간계투로 쓰고 다른 마무리가 올라오는 식으로. 사실 2군에서 전담 마무리까지 둘 필요는 없거든요. 2군 마무리가 1군에서는 중간계투가 될 수도 있으니까, 거기에 대비를 하는 거죠.
# 올해보다 더 화끈한 야구를 하겠다
▶그렇군요. 이제 다른 질문을 드려볼까요. 뭐 항상 여유가 넘치시는 편이지만, 그래도 최고 인기 구단인 롯데의 감독을 한다는 건 분명 부담이 되는 일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부산에 오셨을 때 받은 느낌에 대해 듣고 싶은데요.
며칠 전에 이 지역 사는 후배랑 같이 식당엘 갔어요. 유명한 식당인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더라구요. 우리는 맨 끝에 있는 방을 예약해서 그리로 들어갔어요. 뭐 그 당시가 한창 취임식 하고 할 때라 누가 볼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데, 마침 손님 중에 한 분이 저를 알아본 거예요. “어, 우리 감독이다!”라고 하더라구. 부산 사람들은 롯데 감독이라고 안 하고 ‘우리 감독’이라고 하대요. (일동 폭소) 이제 한쪽에서 ‘양승호, 양승호’하고 외치니까 나중에는 식당 전체가, 밥 먹던 사람들까지 전부 양승호를 외치고 있더군요. 할 수 없이 홀에 나가서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인사를 했어요. “감독님, 내년에 믿습니다”하는 분도 있고, 방으로 소주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한 30병은 들어왔던 거 같아요. 그런데, 실은 이게 진짜 무서운 거예요. 왜냐면 잘해주는 거에는 항상 반대급부가 있거든요. 이렇게 기대를 하고 환영을 하다가도 결과가 나쁘면, 욕을 먹게 되어 있거든요. 그건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예요. 대가는 항상 따르게 되어 있는 거예요.
▶부산 지역 여론 등을 감안하면 시즌 초반 성적이 중요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런 얘기 많이 듣는데, 저는 크게 부담 갖지 않아요. 봄철 성적 중요한 건 다 아는 사실이죠. 이런 걸 생각해야 해요. 일 년 133게임인데 보통 초보 감독들은 초반부터 무리를 해요. 이길 거 같다 싶으면 있는 투수 다 집어넣거든. 한 게임 이기겠다고. 그런데 뒤에 가서 보면 나중에 1승 하나 초반에 1승 하나 똑같은 거예요. 해서 제가 코치들한테 얘기한 게 6월까지 5할 승률에 1, 2승 플러스 마이너스 할 정도면 우리는 충분히 치고 올라갈 수 있다. 그렇게 얘기했어요. 무리할 이유가 없어요. 가령 팀이 1-0으로 9회에 이기고 있다고 쳐요. 감독이 불안해요. 그래서 다음날 선발을 구원으로 내서 1-0으로 끝내 이겼어요. 이게 포스트시즌이면 그럴 수도 있는데, 페넌트레이스는 다르단 얘기죠. 그런데 초보 감독이 그런 무리수를 자주 띄우거든요. 그러면 꼭 탈이 나요. 오래 못 가거든요. 당장 어느 정도까지는 치고 올라갈지 모르지만, 후반에 가서 힘이 달리게 돼요.
▶시즌 전에 구상한 팀의 시스템을 꾸준히 지켜나가겠다는 말씀이시군요.
뭐 이런 건 있을 수가 있죠. 승리조 투수진이 몇 번 시합을 망치면 패전조와 승리조 자리를 바꾸는 정도의 변화는 있을 수 있죠. 믿음이 필요하지만 도저히 막아낼 수 있는 볼이 아닌데 필승조에 놔둘 수는 없는 거니까. 구위가 떨어져서 필승조는 힘들겠다 싶으면 한 템포 정도 2군에 가서 쉬게 하고, 2군에 힘있는 투수 올려서 승리조 하고 그런 운용의 묘는 발휘해야죠. 그런데 생각해 볼 게 프로야구는 어차피 일주일에 3승 3패만 하면 성공했다고 하거든요. 5할 승률이잖아요? 1승 5패는 하면 안돼요. 2승 4패를 하면 다음주에 4승 2패를 하면 되는데, 1승 5패 해버리면 5승 1패 하기가 힘들잖아요.
▶프로의 세계에서 요행을 바라는 건 금물이죠.
뭐 그게 감독이 원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닌데, 아무튼 주초에 3승을 해놓으면 편해지거든요. 그 담에는 투수를 좀 약한 투수를 썼는데 타자들이 잘 쳐서 이기는, 감사한 경우도 생길 수 있고. 물론 그걸 계산에 넣으면 안되는 거지만요. 아무튼 현재 계획은 시즌 절반 정도를 치른 시점에서 5할 승부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분명히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그때쯤이면 아마 저 스스로도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을 시점이고, 팀을 끌고갈 수 있는 역량이 확고하게 생길 거예요. 그러면 성적이 밑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더 강해질 수 있거든요. 주전 서너명이 한꺼번에 빠지는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이상 말이죠.
▶이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일 수 있는데요, 감독님은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입장이시잖아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내년 시즌 뒤 혹시라도 주축 선수들이 FA가 되어 팀을 떠날 경우에 전력을 재정비해야 하는 책임까지 함께 짊어지고 계십니다. 이와 관련 어떤 구상을 갖고 계신가요.
감독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염두에 둬야 하니까, 그런 일은 없어야 되겠지만 주축 선수가 팀을 떠나는 상황까지도 생각하고 미리 대비를 해야겠죠. 저는 이런 생각을 해요. 보통 감독이 팀을 떠나게 되면 서로 안 좋게 끝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서로 책임 전가하고 감정 상하고. 저는 그럴 게 아니라 롯데라는 팀이 계속해서 강한 전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떠나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꼭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4위권에는 들어갈 수 있게, 그래서 제가 떠나더라도 “양 감독이 젊은 선수들 많이 키워줬지. 지금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이 그때 경험이 없었으면 성장하기 힘들었을 거야”라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팀을 만들었으면 해요.
▶내년 시즌 이후까지도 염두에 두고 계시다는 뜻이군요.
어느 정도 그림을 그려놨어요. 감독은 당장 다음 시즌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그림을 그려야 하거든요. 제가 아직 3년치까지는 그림을 안 그렸는데, 내년하고 후년까지는 어느 정도 그려놨어요. 최악의 경우 주전들이 팀을 빠져나간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시급한 과제는 현재 백업으로 뛰는 선수들이 1군 주전들의 기량에 최대한 근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그 선수들이 당장 내년 시즌은 아니더라도 후년 이후에는 주전급으로 뛸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감독은 떠날 때 떠나더라도, 그렇게 성장한 선수들은 계속 남아서 팀을 이끄는 주축이 될 때가 분명히 오게 되어 있어요.
▶지금 시점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이상하지만 (웃음) 보통 신임 감독의 첫 해 성적을 보면 전임 감독이 팀을 망쳐놨는지, 잘 가꿨는지가 나타난다고 하더군요.
예전에 LG처럼 기껏 젊은 선수들 키워놨는데 없던 일로 만들면 곤란하지만, 새로운 감독이 전임 감독이 키운 선수들 쓰면서 좋은 성적 내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건 그 감독 복이라고 봐야죠. 저도 전준우나 황재균 같은 애들 만난 게 제 복이거든요. 롯데 왔더니 마침 그런 좋은 선수들이 있으니까. 만약 내년 시즌 전준우가 3루에서 잘해준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잘 만난 거죠. 반대로 전준우가 제대로 못해준다 하면 그때는 ‘이상한 감독이 와서 망쳤다’는 얘기 듣겠죠. 하하.
▶오래전부터 프로 감독을 준비해 오셨는데, ‘내가 프로팀을 맡으면 이런 감독이 되겠다’고 평소에 생각하시던 감독상이 있나요.
뭐 일단은 이전까지는 아마야구에 있었으니까, 저 스스로도 제가 어떻게 시합을 풀어나갈지, 어떤 색깔이 나올지 궁금해요. 물론 틀은 있죠. 이것만큼은 죽어도 해야 돼, 이건 죽어도 안 돼 하는 틀은 있어요. 가령 투수 같은 경우 선발진에서 믿는 선수는 잠깐 휘청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기회를 주고 믿고 맡긴다는 원칙. 선발투수는 어차피 가을, 겨울에 운동할 때 가장 좋았던 선수들이니까, 그네들한테는 감독인 제가 욕을 먹더라도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원칙이죠. 그 외에도 이런저런 구상을 갖고 있어요. 요즘에는 만일 내가 연패에 빠지면 어떻게 대책을 세울 건가, 내년이 올해보다 성적이 나쁠 때 어떤 대처를 하고 팀을 어떻게 정비해야 하나. 앞서가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생각은 하고 있어요.
▶이건 트위터에서 롯데팬이 주신 질문인데요. 로이스터 감독에 대한 부산 팬들의 애정이 굉장했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극복할 생각인지 알려주세요.
그런데 부산 팬들이 아직까지 저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모를 수밖에 없는 게 제가 선수 시절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아마추어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다보니 잘 모르시는데, 결국 감독은 성적으로 팬들에게 어필할 수밖에 없다고 봐요. 그래도 전력이 좋은 팀에 왔으니까 저는 행복한 거죠. 그리고 제가 하려는 게 로이스터가 만들어 놓은 지금까지의 롯데와 반대로 가려는 게 아니라,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서 더 잘해보겠다는 거니까요. 올해보다 더 화끈한 야구를 팬들에게 보여줄 생각이에요.
▶여유가 있으시네요.
뭐 부담될 거 같다고 사람들이 자꾸만 그러는데, 저는 설사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저 스스로가 최선을 다했다면 후회는 안 해요. 제가 게임을 잘 못 풀어내서 졌으면 ‘그게 내 능력이구나’ 받아들이면 되거든요. 또 제가 선수나 코치진을 잘못 가르쳐서 나쁜 결과가 나면 ‘내 인덕이 부족하구나’ 생각하면 돼요. 가장 중요한 건 모든 환경과 결과를 내 탓으로 돌리면 되는 거예요. 그럼 속이 편해요. 안 그러고 남의 탓을 하기 시작하면, 그게 다 스트레스 받는 원인이에요.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감독님은 고려대에서 구타를 없애고 학생들이 수업을 듣게 하겠다는 취임 때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이제 롯데 감독으로서 팬들에게 약속을 하실 차례입니다.
아직 팬 여러분이 저에 대해 잘 모르시기 때문에 오해도 있고 불안하게 보는 시선도 있는 것을 잘 압니다. 제가 약속드리는 것은, 정말 올해보다 더 강한 롯데를 만들고자 왔다는 겁니다. 올해보다 더 화끈한 야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선수들을 잘 이끌어서 내년 가을에도 롯데 팬들이 야구장에 야구를 보러 올 수 있게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내년 이맘 때에는 팬 여러분이 싸인을 받고 싶어하는, 훌륭한 감독이 되겠습니다. 갈매기, 파이팅!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 시즌 좋은 성적으로 꼭 성공하는 감독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진행 - 배지헌, 손윤
인터뷰 정리 - 이응수, 송승현, 배지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