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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질문 1] 한국에 보수주의는 있나?

노둣돌 2010. 12. 13. 11:05
[노무현의 질문 1] 한국에 보수주의는 있나?
(서프라이즈 / 스나이퍼 / 2010-11-02)


“보수의 철학이 뭐냐? 보수의 철학이 뭐요? 없어요. 보수라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이런저런 글도 읽고 책도 읽고 했는데, 보수는 가치 이론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왜 보수냐 했을 때 철학적인 기초가 없습니다. 그 보수, 보수의 가치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놓은 걸 본 일이 없어요.” - <진보의 미래> 206쪽

<진보의 미래>에서 대통령님이 던진 질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보수는 <한국의 보수>를 말한다. 유럽이나 미국의 보수는 나름의 철학이 있다.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다. 물론 부시 같은 변종도 있지만 말이다. 영국의 새로운 지도자 데이빗 캐머런 같은 보수주의자도 있다.

데이빗 캐머런 강연 동영상 보기 : http://djuna.cine21.com/bbs/view.php?id=main&no=217234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엄격한 도덕성을 바탕으로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전통을 고수하는 보수주의자는 있는가? 가장 근접한 사람으로는 중앙대 법대의 이상돈 교수를 들 수 있겠다. 이 교수의 글을 통해 한번 엿보자.

최근에 각료로 임명된 이들이 위장전입한 경우가 많았음이 밝혀지자 “보수 정권의 도덕성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나는 같은 이유에서 이런 표현이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명박 정권을 ‘보수정권’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이명박 정권을 ‘보수정권’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보수’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보수정권’이라면 영국의 대처 정권과 미국의 레이건 정권을 들어야지 이명박 정권을 ‘보수정권'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권은 법치주의 무시, 방만한 정부 지출, 무리한 공공토목사업 강행 등 보수주의 철학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창했지만 본인들은 주식투자도 모를 정도로 고지식하고 또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성실하게 일하고 자유롭게 경쟁하는 사회가 보다 도덕적이고 공정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들이 총리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정권에 공직비리 문제가 별로 없었던 것은 이들의 성품과도 관련이 있다. 레이건 정권 당시 각료들 중에는 2차 대전 참전용사들이 많아서 의혹의 병역면제자가 많은 이명박 정권과 큰 대조를 이룬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임명된 고위공직자들 중에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경우가 많은 것과 이런저런 사유로 위장전입했던 범법 경력자들이 많은 것은 정권 자체가 공적인 것보다는 개인적인 이익을 앞세우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보더라도 이명박 정권은 결코 ‘보수정권’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위장전입을 ‘도덕성 문제’로 부르고, 이명박 정권을 ‘보수정권’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원문 : http://www.leesangdon.com/bbs/board.php?bo_table=column&wr_id=432&page=2

도덕성을 강조하고 있다. 병역의무, 납세의무와 같은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 애국심이야말로 보수의 가장 큰 덕목이다. 과연 현실이 그러한지는 모르겠으나, 성실하게 일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을 보수의 가치로 제시하는 것 역시 수긍이 간다.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말하는 것일 테다.

대통령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한 학자는 한홍구 교수다. 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현대 한국에 보수주의는 존재하는가 라고. 진짜 바보가 아닌 한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를 이해할 것이다. 현재 수구 세력이 보이는 작태는 한국에 건강한 보수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출처 : 진보의 미래 2권-노무현이 꿈꾼 나라 23쪽)

그렇다. 한국에는 건강한 보수가 씨가 말랐다. 언제부터? 조선시대부터다. 그리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하던 ‘건강한 보수주의자’들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거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가문 전체가 독립운동에 뛰어들고, 모든 재산을 군자금으로 사용하면서 그들은 주류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친일세력과 기회주의자들이 차지했다. 친중에서, 친러로, 친일로, 친미로 변화무쌍하게 옷을 갈아입으면서 오늘날에도 부귀영화와 권력을 틀어쥐고 있다.

 

[한홍구의 답변] 한국에 보수주의는 없다


노무현의 첫번째 질문은 “한국에 보수주의는 있는가”이다. 여기에 대해 답변을 한 학자는 한홍구 교수다. 한 교수는 <노무현이 꿈꾼 나라>에서 이렇게 답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황제인 천자의 권한이 지배 귀족들의 권한을 압도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새로운 왕조의 창건이 지배층의 전면적인 교체를 가져왔다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 위의 책 24쪽

한 교수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실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줄이자면 이렇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등장하지만 신라를 지배했던 지방의 호족들은 여전히 위세를 떨친다. 다만 신라에서 차별을 받았던 6두품 이하의 신진세력이 새로 편입될 뿐이었다. 다시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등장한다. 내가 배웠던 국사는 이랬다. 고려귀족사회가 조선양반사회로 전환되었다고. 그렇다. 소수의 귀족에서 양반이라는 좀 더 양적으로 많은 지배층이 등장한 것이다.

결국 신라에서 고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동안 지배층의 숫자만 늘어난다.

그리고 조선이 망하고 일제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조선의 양반들은 일제의 지배수단으로 활용된다. 지방은 토호세력의 수중에 있었는데, 이들의 기득권을 유지해주면서 통치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조선의 양반들은 친일세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다만 양심있는 양반들, 이를테면 경주 최씨 부자라든지 서울의 허씨 집안, 이회영 집안 등과 같은 양반들은 항일 운동을 하면서 몰락해버렸다.

그리고 친일로 옷을 갈아입은 기존의 양반에다가 일제협력의 대가로 자본을 축적하여 새롭게 지배층에 편입된 사람들이 있었다. 조선일보의 방씨 일가가 그런 케이스다. 그리고 해방이 되었다. 하지만 친일파는 청산되지 않았고, 이들은 대한민국의 지배층으로 존속한다.

여기에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새롭게 지배층으로 떠오른 것이 재벌이다.

결국 왕조가 교체되든, 국체가 변경되든, 신라 이래로 오늘날까지 지배층은 한 번도 교체된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다만 기존의 지배층에 새로운 지배층이 추가되는 형식이다.

그래서 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의 전환기에 단 한 번도 제대로 과거청산을 못 하다 보니 한국의 지배 엘리트는 근본적 교체를 겪은 적 없이 끈질기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엘리트 집단 전체의 구성은 끊임없이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고 일부 구성원들이 탈락되면서 변화되어 왔다……. 한국의 지배집단은 놀라운 연속성을 누려 왔다” - 위의 책 25쪽

그렇다면 전통적인 보수세력은 어디 갔을까? 진정한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위에 언급했지만, 조선의 선조 재위 시절 왜의 침략에 맞서 의병을 일으켰던 지방의 양반들은 전쟁이 끝나고 모두 죽임을 당했다. 왜가 한양에 이르자 선조는 부끄럼 없이 압록강을 넘어갈 생각을 했고, 백성들은 왜에 맞서기보다는 왕궁에 불을 질렀다. 노비문서를 불태웠다. 사실상 나라가 망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왜에 맞선 것은 지방에 묻혀 있던 양반들이다. 남명 조식의 제자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김덕령, 곽재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김덕령의 경우 전쟁이 끝나자 오히려 죽임을 당했다. 이순신이 전쟁터를 살아서 나가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일제가 조선을 침탈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한양의 이름있는 부자였던 허위는 집안 형제들과 자식들, 그리고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고, 이회영 집안 역시 마찬가지다. 경주 최씨 집안도 독립군자금 대느라 가세가 기울었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 아래서 완전히 망해버렸다. 우리나라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있었다. 그러나 모두 멸문지화를 당하거나 사라져갔다.

그래서 한국 보수세력은 이렇게 되었다. 한 교수는 이렇게 쓰고 있다.

“보수 세력 중 높은 도덕성과 자신들이 운영해 온 사회와 그 하부 구성원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지닌 분파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다가 사라져 갔고, 제국주의 세력의 하위 동맹자로 몸을 낮춘 분파는 이익은 유지하였으되 사회를 이끌어 나갈 동력과 도덕성은 잃어버렸다.” - 위의 책 26쪽

“조선 최고의 전통 지식인들이 서당을 헐어 신식학교를 세우고 수천 석 재산을 팔아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의 자금을 대다가 끝내는 자기 한 몸 누울 관도 마련하지 못한 채 쓸쓸히 사라져 갔다. 동네의 가난한 조선 이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널빤지로 만든 관에 실려 고향에 돌아온 이들이 땅에 묻힐 때 조선의 전통적인 보수주의도 같이 묻혔다.” - 위의 책 28쪽

그렇다면 해방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한 교수는 이렇게 쓰고 있다.

“국회 프락치 사건, 반민특위 해산,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등은 친일파 세력들이 대한민국을 탈취한 쿠데타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친일 세력의 청산이 좌절되었다. 친일 세력의 청산이 단순히 좌절된 정도가 아니라, 친일 세력의 청산을 주장해 온 민족적 양심을 가진 보수 세력이 친일파 민족 반역자들에 의해 거꾸로 청산되고 말았다.…… (중략)…… 한국의 주류 세력은 늘 민족보다는 동맹을 우선시했다. 그들은 주인으로서보다는 주구일 때 더 편안해 보였다.” - 위의 책 32쪽

그렇다. 한국에는 보수세력이 없다. 보수주의자도 없다. 몇몇 소수가 있지만 그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양심적인 보수주의자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같은 역사의식을 갖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송시열의 노론이 지배한 이후 한반도에는 숭명반청의 중화사대주의가, 다시 구한말의 친러, 친일, 친중의 현란한 변신, 그리고 마침내 친일로, 해방 후 다시 친미로 변신하며 끊임없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더 나아가 이익을 확대하는 데 온 정성을 기울였다.

과거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리라. 그래서 한 교수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과거청산이란 과제는 진보와 보수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도리이다. 뉴라이트처럼 과거청산 자체를 죽여 버리려는 태도를 보이는 한 보수세력은 진보진영으로부터 절대로 진지한 대화 상대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합리적인 보수와 따뜻한 진보가 서로 자극을 주고 때로 협력하고, 때로 경쟁하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한다.” - 위의 책 37쪽

그렇다. 한 교수가 말하는 이런 나라가 진보된 대한민국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모습이다.

 

스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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