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노짱관련)

[秘事] 내 친구 노무현 죽음까지... ② 제2회 (5공 청문회)

노둣돌 2011. 5. 30. 11:14

 

 

[秘事] 내 친구 노무현 죽음까지... 제2회 (5공 청문회)

                                                                                                                                           

                                                                                                                                      정인석

 

 승리의 눈물   시종일간 막상막하의 시소게임이 전개되었다. 이제 막 게임이 끝나려는 즈음 마지막으로 허삼수 후보가 희망을 거는 수정동 지역이 남아 있었다. 그 지역은  허삼수가 막판 피치를 올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더 이상의 이변은 없었다. 몇 투표함에 역전이 있었으나 우리가 이겼다. 50.6%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노 대통령은 초저녁부터 자기 시작했다.  결론이야 어떻게 나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내가 아는 중앙동 조그마한 목욕탕에 부탁해서 사람을 받지 않고 대통령과 같이 뜨끈한 물에 몸을 푹 담구어 풀었다.

 

 

허삼수 밀어 붙이기   새날이 밝고 초선의 바쁜 업무가 정신없이 시작되었다. 초장기에는 업무방침이 지역구 일보다는 의원으로서 입법 활동에 신경을 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녹치 않았다. 찍어 줬더니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등 온갖 악평이 난무했다. 반대로 허삼수는 완전히 운동화 끈 졸라매고 지역구를 누볐다. 하루 목욕탕 세 군데 이상을 돌며 등 밀어주는 것은 기본이고 초상이 나면 불이 나게 달려가서 울어주고, 길흉사 부조금도 두둑이 챙겨주고 말 그대로 지역구를 몸으로 때우고 누볐다. 그때 당시 동구지구당은 참모 3명 여직원 1명 이렇게 고정인원이 있었다. 점점 여론이 악화되자 대통령도 대책이 없는지 나보고 지구당을 맡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말이 맡으라는 것이지 어디 돈 좀 구해서 지구당 꾸려보라는 말이었다.

 

 

우편요금 없어서 sos   지구당 조직은 청년부 부녀부 직능부 정도 있었으나 그의 청년부, 부녀부에서 일은 다했다. 제일 큰일은 사람 동원이었다. 중앙당에서 지도부가 내려와 세미나를 한다든지 집회를 하게 되면 야당모임에 자발적으로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거의 동원된 인원이었다. 그 때문에 평소에 청년, 부녀부 관리를 잘 해두어야 한다. 무급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안 나오면 그만이다. 동원이 있으면 전화를 몇 번이고 해서 부탁을 하고 또 끝나면 어떤 식이든 회식을 시켜주어야 된다. 그래야 뒷발이 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지구당에 한 달에 들어가는 돈은 평균 천오백 정도가 있어야 겨우 꾸려나갔다. 사무실 유지비, 고정인원 인건비, 우편료, 경조사비, 등등 서울에서 받는 의원 세비는 서울에 있는 참모들이 숫자대로 나누어 월급 대신 주었다. 그때 참 어려웠다. 안면이란 안면은 다 동원하고 단체식사가 있으면 친구 불러서 서폰서 시키고 별짓을 다했다. 유권자들에게 보낼 우편요금이 없어서 대통령께서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서울에 계신 조종성 회장님(대통령의 대부격임)께 sos 를 보내기도 했다.

 

 

정주영 굴복시키다   그러다가 88년11월 5공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실지 5공청문회는 노태우 정부가 5공시절 참고 참았던 민심을 6공까지 연장되는 것이 부담서러워 자기 친구이자 상사였던 전두환을 청문회장에 세우고 죄를 물은 것이었다. 이 청문회에서 초선의 대통령은 실력과 자질을 국민 앞에 있는 그대로 마치 촌뜨기 같은 외모로 밀어붙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청문회의 백미는 무어라 해도 모든 의원이 회장님, 회장님 하고 굽실거리고 또 자기는 정경유착의 주범이 아니고 피해자라고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빠져나가려는 정주영을 굴복시킨 것이다.

 

대통령: 권력에 돈 갖다 바친 것이 부정이 아니라면 왜 진작 6.29 이전부터 바른 소리를 하지 못했습니까?

정주영: 우리가 그러한 용기를 가지지 못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대통령: 이렇게 권력에 아부하는 것이, 힘 있을 때는 권력에 붙고 없을 때는 권력을 멀리 하는 이중적인 행위이고,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가치관의 오도를 가져오게 하고, 또 한 정의를 실천하다가 죽어간 수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보지 않습니까?

 

정주영: ......

청문회 마지막 날 나가는 전두환을 향해서 대통령이 명패를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내용인즉, 대통령께서 질문하고 있는데 뒤에서 쪽지가 들어왔다. 평민당이 다 뒤집어쓸테니 조용히 있으라는 지도부의 쪽지였다. 청문회 초장부터 타협하려 드는 지도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대통령은 화가 치밀어 명패를 집어 땅바닥에 후려친 것이 전두환 쪽으로 굴러간 것이다.

 

 

권여사 관상   청문회를 무사히 마친 캠프는 잔치분위기였다. 그때 참모 중 조지훈, 강이근, 등이 노무현 대권 프랜을 구상하기도 했다. 대권의 용트림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초기였다. 또 하나의 일화는 80년대 초 대통령께서 부산 삼익비치 아파트에 사실 때 얘기다. 여사님께서 새내기 주부 때 얘긴데 어느 날 동네 아주머니들과 같이 용한 관상쟁이가 왔다 해서 같이 따라갔다. 그땐 새내기 주부라 나이든 아줌마들이 앞장서고 뒤에 따라가는 형편이었다. 관상을 다 보고 난 후 그 관상쟁이가 여사님을 조용히 부르더니 두 손을 꼭 잡고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사모님은 왕비상을 타셨습니다, 뒤에 큰일을 하실 겁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라고 했답니다. 사모님은 부끄러워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그 자리를 황급히 떴 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대통령 주위를 맴돌고 있었지요! 초선의원으로서의 입지는 순탄치 않았다. 여당과 야당과의 거래? 서로 나누어 먹기식의 행태. 이 모든 것이 의리에 강하고 싱그러운 초선 노무현에게는 눈꼴사나운 일이었다. 환멸을 느낀 대통령께서는 사표를 내어 버려 정계의 파문이 일기도 했다.

 

 

보안대 사찰   당시 민주당 동구지구당은 끈덕진 감시를 당하고 있었다. 대통령께서 사상불순자로 분류되어 사무실이 온통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경찰서정보과, 치안 본부대 공분실, 보안대, 안기부 등으로 부터 철저한 감시를 당하고 있었다. 정보과에서는 사무실에도 들어오지도 못하고 프락치를 심어놓고 감시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구지구당 사무실을 빨갱이의 본산지로 취급하고 있었다. 90년 보안대 사찰자료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온 세상이 알게 되었다. 그전에도 대공분실 보안대의 내 친구가 몇 차례 조심하라고 언질을 주었다. 당시 나는 망미동 통한병원 앞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쓰레기수거는 일정금액을 주면 매일 아침 사람이 와서 수거해 가곤 했다. 뒤에 안 일이지만 우리 집의 쓰레기는 특별히 수거해서 분석을 했다고 한다. 무슨 근거로 그런 짓거리까지 했는지 생각하면 섬뜩하기도 하다. 하루는 집을 비웠는데 누군가 들어온 흔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진 것이 없는데 책장 속의 이념서적이 몽땅 없어져 버렸다. 누군가 정보수집 목적을 가지고 침입한 것이 분명했다.

 

 

 

후원금 내고도 이름 남기지 마라   동부산 경찰서에서는 노무현사무실은 빨갱이들이 있는 곳이니깐 조심하라고 공공연히 선전하고 다녔다. 친구들이 후원금이라도 내려고 하면 나하고 사전연락을 해서 대통령을 내 차에 태워서 부산일보 뒤 주차장 등에서 만나자는 식으로 사전 약속을 해서 그곳으로 가서 접선하면, 친구가 다시 내 차를 타고 차를 운행하면서 간단한 인사를 하고 후원금을 차 속에서 전해주고 내리곤 했다. 친구들이 후원금을 내고도 제발 자기 이름은 남기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하곤 했다. 동구지구당엔 아예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금단의 지역이었다.

 

사무실을 옮길 때면 노무현사무실이라면 절대 세를 주지 않았다. 보통 건강보조식품 파는 회사 사무실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밀고 들어갔다. 그러면 처음에는 비켜달라고 난리를 친다. 그래도 모른 척하고 한 달 정도를 죽은 듯이 드나들면 수그러진다. 이렇게 해서 지구당을 겨우겨우 이끌어 왔다.

 

 

 

-정인석 약력-

 

*부산상업고등학교(53회) 졸업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19기) 수료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총 동창회 감사

 

*민주당부산동구지구당 수석부위원장(위원장 노무현)

 

*민주당 서울종로지구당 수석부위원장(위원장 노무현)

 

*변호사 노무현사무소 사무장(서울변협)

 

*개혁국민정당 창당 실무 기획단장

 

*개혁국민정당 부산위원회 운영위원장

 

*101개 시민단체추천후보(부산보선) 선거사무장

 

*열린우리당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

 

*(주)장수천 감사

 

 

 

글쓴이 daum 카페: 노무현-노공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