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노짱관련)
[4회] 살 때와 죽을 때
노둣돌
2011. 12. 6. 12:01
[4회] 살 때와 죽을 때
노무현 평전/[1장] <노무현 평전> 서설 2011/09/05 09:32 김삼웅
근년에 입적한 법정 스님은 <살 때와 죽을 때>란 시를 남겼다.
살 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한다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한다
삶에 철저할 때는 털끝만치도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일단 죽게 되면 조금도 삶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
사는 것은 내 자신의 일이고
죽음 또한 내 자신의 일이니
살 때는 철저히 살고
죽을 때 또한 철저히 죽을 수 있어야 한다
꽃은 필 때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질 때도 아름다워야 한다
모란처럼 뚝뚝 무너져 내릴 수 있을 게
얼마나 산뜻한 낙화인가
새 잎이 파랗게 돋아나도록 칠 줄 모르고 매달려 있는 꽃은
필 때만큼 아름답지가 않다
생과 사를 무를 것 없이
그때 그때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불교의 사생관이다. (주석 5)
태고 보우(太古普愚) 선사가 세상을 등지면서 제자들에게 주었다는 사세갈(辭世渴)이 전한다.
물거품 빈 것 같은 사람의 목숨
여든 남아 살기를 봄 꿈 같았네
이제와 죽으며 가죽 버리니
한바퀴 붉은 해가 서산(西山)을 넘소.
人生命若水泡空
八十餘年春夢中
臨終如今放皮垈
一輪日下西峰
부엉이바위 벼랑 끝에 섰던 노무현의 심경이 이러했을까.
신라의 원효대사는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 죽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뜻이 생(生)이라 한 것은 진(眞)을 융(融)하여 속을 만든 것이니 적멸의 법이 연(緣)으로조차 생기(生起)한 때문이요, 열이 아니라 한 것은 그 적멸이 생의 연유(緣由)이니 적멸이 적멸이 아니므로 적멸의 뜻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으니 그러므로 적멸의 연으로조차 생한 것이다. 적멸이 곧 생이라 한 것은 생하지 아니한 생이요, 생의 뜻이 곧 멸이라 한 것은 멸하지 아니한 멸이다. 멸하지 아니한 멸이므로 멸이 곧 생이 되고 생하지 아니한 생이므로 생이 곧 적멸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다이니엘 걸프는 중국인의(동양인)의 운명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운명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것은 출생의 시간과 사망의 시간을 결정한다. 사망의 방법까지도 결정하고 생존중의 사건과 경험의 범위도 결정한다. 운명에 도전하는 일은 무용한 것이다. 사람들이 해야 할 것은 운명의 의지를 배우고 인생을 사는 가장 좋은 가능한 방법을 결정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운명에 도전하고 때로는 속이려고 하지만, 그런 사람은 지정된 운명을 거역한 대가로 파멸한다. 이러한 태도가 많은 사람들이 지닌 인생의 대사건과 경험을 바라보는 기본 입장이다. (주석 6)
레지스탕스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대문호들의 ‘운명관’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와 그의 운명 사이에 일어난 끊임없는 투쟁은, 일종의 애정깊은 적대관계 그것이었다. 운명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주어진 모든 갈등을 더욱 첨예화시켰다. 더욱이 두드러진 대립상들을 서로 찢어 버리기 위해 고통스럽게 잡아 뜯었다. 운명은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게 아픔을 주었다. 그리고 그 역시, 운명이 그를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기에 자신의 운명을 사랑했다. (주석 7)
앞의 인용문 괄호 안은 도스토예프스키다.
여기에 노무현을 끼워 넣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누구라도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긴 어렵지만 노무현은 ‘운명’의 사람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빈민구제원에서 태어나 세상을 대면한 첫 순간부터 벌써 그가 있을 자리는 정해져 있었듯이, 노무현의 태어남과 성장의 자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멸시받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인생의 밑바닥에서 태어나 가난의 고통을 겪으며 그러나 의롭게 성장하고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그래서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지 않는’사회를 만들고자 하여 ‘반칙과 특권’을 누려온 자들과 적대할 수 밖에 없었다.
노무현은 가끔 한국 수구세력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발언을 하였다.
그중의 하나가 “우리 아이들에게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남기고 싶다.” 이 얼마나 무서운 비수인가, 얼마나 죽이고 싶었겠는가.
주석
5> <법정 잠언집>, 류시화 엮음, 134~135쪽, 조화로운 삶, 2006.
6> 다니얼 H, 컬프, <중국인의 운명관>, 171쪽, 뉴욕 컬럼비아대학, 1925.
7> 슈테판 츠바이크, 장영은ㆍ원당희 옮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186쪽, 자연사랑, 2001.
살 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한다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한다
삶에 철저할 때는 털끝만치도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일단 죽게 되면 조금도 삶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
사는 것은 내 자신의 일이고
죽음 또한 내 자신의 일이니
살 때는 철저히 살고
죽을 때 또한 철저히 죽을 수 있어야 한다
꽃은 필 때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질 때도 아름다워야 한다
모란처럼 뚝뚝 무너져 내릴 수 있을 게
얼마나 산뜻한 낙화인가
새 잎이 파랗게 돋아나도록 칠 줄 모르고 매달려 있는 꽃은
필 때만큼 아름답지가 않다
생과 사를 무를 것 없이
그때 그때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불교의 사생관이다. (주석 5)
태고 보우(太古普愚) 선사가 세상을 등지면서 제자들에게 주었다는 사세갈(辭世渴)이 전한다.
물거품 빈 것 같은 사람의 목숨
여든 남아 살기를 봄 꿈 같았네
이제와 죽으며 가죽 버리니
한바퀴 붉은 해가 서산(西山)을 넘소.
人生命若水泡空
八十餘年春夢中
臨終如今放皮垈
一輪日下西峰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뒤편의 부엉이바위.
부엉이바위 벼랑 끝에 섰던 노무현의 심경이 이러했을까.
신라의 원효대사는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 죽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뜻이 생(生)이라 한 것은 진(眞)을 융(融)하여 속을 만든 것이니 적멸의 법이 연(緣)으로조차 생기(生起)한 때문이요, 열이 아니라 한 것은 그 적멸이 생의 연유(緣由)이니 적멸이 적멸이 아니므로 적멸의 뜻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으니 그러므로 적멸의 연으로조차 생한 것이다. 적멸이 곧 생이라 한 것은 생하지 아니한 생이요, 생의 뜻이 곧 멸이라 한 것은 멸하지 아니한 멸이다. 멸하지 아니한 멸이므로 멸이 곧 생이 되고 생하지 아니한 생이므로 생이 곧 적멸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다이니엘 걸프는 중국인의(동양인)의 운명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운명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것은 출생의 시간과 사망의 시간을 결정한다. 사망의 방법까지도 결정하고 생존중의 사건과 경험의 범위도 결정한다. 운명에 도전하는 일은 무용한 것이다. 사람들이 해야 할 것은 운명의 의지를 배우고 인생을 사는 가장 좋은 가능한 방법을 결정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운명에 도전하고 때로는 속이려고 하지만, 그런 사람은 지정된 운명을 거역한 대가로 파멸한다. 이러한 태도가 많은 사람들이 지닌 인생의 대사건과 경험을 바라보는 기본 입장이다. (주석 6)
레지스탕스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대문호들의 ‘운명관’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와 그의 운명 사이에 일어난 끊임없는 투쟁은, 일종의 애정깊은 적대관계 그것이었다. 운명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주어진 모든 갈등을 더욱 첨예화시켰다. 더욱이 두드러진 대립상들을 서로 찢어 버리기 위해 고통스럽게 잡아 뜯었다. 운명은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게 아픔을 주었다. 그리고 그 역시, 운명이 그를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기에 자신의 운명을 사랑했다. (주석 7)
앞의 인용문 괄호 안은 도스토예프스키다.
여기에 노무현을 끼워 넣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누구라도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긴 어렵지만 노무현은 ‘운명’의 사람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빈민구제원에서 태어나 세상을 대면한 첫 순간부터 벌써 그가 있을 자리는 정해져 있었듯이, 노무현의 태어남과 성장의 자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멸시받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인생의 밑바닥에서 태어나 가난의 고통을 겪으며 그러나 의롭게 성장하고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그래서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지 않는’사회를 만들고자 하여 ‘반칙과 특권’을 누려온 자들과 적대할 수 밖에 없었다.
노무현은 가끔 한국 수구세력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발언을 하였다.
그중의 하나가 “우리 아이들에게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남기고 싶다.” 이 얼마나 무서운 비수인가, 얼마나 죽이고 싶었겠는가.
주석
5> <법정 잠언집>, 류시화 엮음, 134~135쪽, 조화로운 삶, 2006.
6> 다니얼 H, 컬프, <중국인의 운명관>, 171쪽, 뉴욕 컬럼비아대학, 1925.
7> 슈테판 츠바이크, 장영은ㆍ원당희 옮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186쪽, 자연사랑,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