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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가 그리운 날, 밀양 산외면으로 갔지요

노둣돌 2011. 6. 10. 15:54

요 며칠 갑자기 김치가 당긴다. 맵짜고 시큼하며 와삭와삭 씹히는 거! 그런 걸로 속을 확 채우고 싶다. 왜 그렇지? 봄날이라 입이 헛헛한가? 지인에게 투정 비슷하게 말을 꺼내니 "당기면 당기는 대로 끌려가면 되지, 뭘 고민이냐"며 경남 밀양에 한번 가 보란다. 얼음골 가는 길과 표충사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있는 금곡이라는 마을. 만족할 거라 장담까지 하며 누구를 소개해 준다. 양대용 씨. 밀양 산외우체국장으로 있다고 했다. 그래!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되지 그게 뭣이라고.



허! '금곡 두꺼비 식육식당'(055-352-5101·경남 밀양시 산외면 금곡리 89의 8)이다. 작고 낡은 건물. 20평 겨우 됨직한데 그나마 한편은 구멍가게로 쓰고 있다. 여기에 김치가?

긴가민가 하며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양 국장이 "멀리서 오느라 고생하셨네. 제가 이 집 평생 단골입니다"며 손을 내민다. 눈매 서글하고 웃음소리 큰 호인이다. 주방을 향해 "손님 오셨는데 나와 보셔"라고 소리치니 한 아주머니가 나온다. 주인 김정숙 씨다. 두 사람은 모두 산외면 금곡마을 토박이다. 김치 맛보러 왔다고 하니 김 씨는 "어찌 된 일인지 우리 집은 사람들이 고기보다 김치를 더 찾는답니다"라며 역시 큰 소리로 웃는다.

표충사 가는 길목 '두꺼비 식육식당'서 맛본 김치
붉은 빛깔에 윤기 자르르… 보기만해도 군침
전골로 끓여도 무르지 않고 탄력, 감칠맛까지

"쇠똥 비료로 직접 키운 배추·무로 담가
고기보다 김치 찾는 사람 더 많아요"


방에는 이미 한 상 차려져 있었다. 약속 시간에 30분쯤 늦었는데, 먹지 않고 기다린 것이다. 주 요리는 김치전골. 돼지고기, 버섯 따위를 넣었는데 꽤 정성을 들인 모양새다. 붉은 고추, 푸른 부추, 흰 팽이버섯 등으로 색색의 모양을 냈다. 국물은 매콤하다. 적당히 짭조름하고, 혀에 착 감아드는 찰기까지 느껴진다. 이런 걸 감칠맛이라 하나? 전골 속 김치를 집어 입에 넣어 본다. 전골로 익힌 것인데도 무르지 않고 탄력이 있다.

김 씨에게 어떤 김치냐고 하니 직접 담근 것이란다. 몇 년 묵은 것은 아니고, 지난해 김장 때 담근 것이란다. 전골 옆에는 여러 종류의 김치를 내놨다. 포기째 놓인 배추김치는 양념 잘된 붉은 빛깔에 윤기가 흐르고, 무김치는 때깔이 싱싱해 보인다. 물김치는 맑고 깨끗하다. 입 안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맵짜고 시큼하고 와삭와삭 씹힌다. 그래, 이런 걸로 속을 채우고 싶었던 것이다.

주인 김 씨보다 양 국장이 김치 자랑에 더 열성이다. "저도 여기 김치 자주 갖다 먹습니다. 사장이 잘 줘요. 손이 워낙 커서. 하하. 맛과 향이 다른 김치하고 다르거든요. 여기가 얼음골과 표충사 가는 길목이거든요. 여름철이면 이곳이 사람들로 북새통이 되지요. 근데 이 집에 김치 사러 오는 사람 엄청 많아요. 특히 캠핑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습니다."

김 씨도 그게 희한하단다. 그리고 썩 유쾌한 건 아니란다. 식육식당에서 고기가 잘 나가야지 김치가 더 잘 나간다니. 별 광고도 않는데. 자기도 이유를 모르겠단다. "바깥 어른이 한우 50여 마리를 직접 키우거든요. 도축장에서 잡아오면 뼈 추리고 다듬고, 세세한 처리는 여기서 직접 다 해요. 고기 참 좋거든요. 그런데 김치는 별로 알리지 않는데도 소문이 나서…."

비법이 있느냐고 물으니 김 씨는 그냥 남들처럼 담근다고 했다. 단지 이런 건 있단다. 김치의 주 재료인 배추나 무를 다 직접 농사지은 걸로 쓴다. 고추도 인근 표충사 골짜기에서 재배된 거 사서 직접 손으로 말리고 다듬고 해서 사용한다. 이른바 '로컬푸드'인 셈이다.

"한번은 다른 데 걸 사서 해 보니까 빨리 물러지는 거예요. 색깔도 안나고. 이상한 냄새도 나는 것같고. 빨리 키우려고 물을 많이 줘서 그렇나, 아님 속성 재배하기 위해 비료를 특별하게 준 게 있나, 그리 짐작해요. 하긴 상업용으로 키운 거하고 자기 쓰려고 키운 거 하고 다를 수밖에요. 우리 배추, 농약 안 치거든요. 그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렇게 지은 배추로 김치 담그면, 김치 다 떨어질 때까지 싱싱해요. 여기 봐요. 처음 담갔을 때하고 별 차이 없이 좋잖아요. 우리 김치가 맛나다면 그 때문이라 봅니다."

양 국장도 거든다. "이 집에서 소를 직접 키우니까, 그 쇠똥만 비료로 써도 되거든. 다른 비료 안 써도 된다 그말입니다. 약 쓴 배추는 담근 지 몇 개월 지나면 맛이 크게 떨어집니다. 이 집 김치는 유기농으로 지은 거니, 지금 내놓아도 작년 가을 김치랑 똑같애. 화학비료 친 거는 한 해 지나면 물이 출출 나고 군내도 나거든. 직접 농사 지어서 김치 담그는 거, 그게 중요한 거지."

김 씨가 잠깐 나가더니 뭔가를 졸인 냄비를 갖고 들어 온다. 다슬기와 민물고기인 꺽지를 넣어 무와 함께 졸인 거란다. 바깥주인이 자기 먹으려고 근처 강에서 잡아와 끓여놓으라 한 건데,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고 생각난 김에 내놓는단다. 근데, 허, 이거 맛이 심각하다. 달착지근하면서도 입에 끈적하게 남는 맛이다. 뼈 씹는 맛도 좋다.

그러고 보니 김치전골이나 이 꺽지조림이나 이 식당 차림표에는 없는 것들이다. 식육식당이니 생등심, 양념불고기 따위고 식사류래야 김치·된장찌개, 육개장, 돼지국밥 정도다. 김 씨는 찾는 사람에게만 해준다고 한다. 그럼 가격은? "사람따라, 내 맘따라 다르겠지요? 하하, 농담이고, 전골은 1인분 6천 원 정도, 민물고기·다슬기 조림은 한다면 크게 해서 4만~5만 원 받으면 되지 않을까요."

맛난 김치에 전골, 조림이 있으니 밥이 쉬이 들어간다. 밥 더 달라고 하니 김 씨, 아예 솥째 갖다 놓고는 양대로 퍼 드시란다. 그 양반, 진짜 손 한 번 크다. 과식하기 딱 좋다. 그 점은 위험하다.

이 집 김치 덕분에 헛헛하던 속을 제대로 달랠 수 있었다. 잘 만든 음식은 이리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그러고 보니 식당 이름을 왜 '두꺼비'라 했는지 묻지 못했다. 그를 핑계로 조만간 한 번 더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