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검·경수사권 조정
(양정철닷컴 / 김인회 / 201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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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선진국에선 수사권과 기소권이 제도적 혹은 실질적으로 분리돼 있습니다. 두 가지 권한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권한을 행사하는 기관이 합쳐지면 너무 권한이 큰 조직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보유, 이것이 바로 검찰이 형사절차를 사실상 지배하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강력한 수사권과 기소권
수사권은 범죄가 발생했을 때 범죄혐의 유무 및 증거를 수집하고 범인을 확보하기 위해 갖는 수사기관의 권한입니다. 그런데 수사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됩니다. 증거를 수집하고 범인을 확보하려면 당연히 어느 정도의 강제조치는 필수입니다. 필요한 경우 사람을 구속하여 신체의 자유를 침해합니다. 물건을 압수하여 재산권을 침해하기도 합니다. 출석을 요구하여 수사의 대상자로서 조사를 받도록 사실상 강요하기도 합니다.
수사의 개시 및 수사방법의 선택은 범인이나 무고한 자나 일단 수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불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 긴급 체포돼 48시간 동안 구금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수사로 인한 피해가 엄청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두할 때 피의사실이 공표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수사의 개시나 수사방법이 위법하거나 혹은 부당한 경우가 있다면 이는 사전에, 동시에, 그리고 사후에 견제·감시되어야 합니다.
기소권은 범죄혐의가 충분하고 또 처벌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때 유죄판결을 청구하는 권한을 말합니다. 재판을 청구하는 기소는 수사보다도 더한 불이익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본인 의사에 관계없이 공개재판으로 혐의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기 때문입니다. 최종적으로 무죄로 확정될 때까지 공중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이처럼 기소권 역시 국민 인권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므로, 기소권도 신중하게 행사돼야 합니다. 기소해야 할 사건은 기소해야 하지만 무고한 사건은 기소하지 않아야 합니다. 기소권을 위법, 부당하게 행사하는 경우를 대비해 이에 대한 견제·감시 장치가 필요합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에 대해 각각 견제·감시 장치가 필요할 뿐 아니라 수사권과 기소권 사이에서도 견제·감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수사를 직접 시작한 사람이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게 되면 수사과정의 위법이나 부당함을 발견하고 통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스스로 범인임을 확신하여 수사를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결합돼 있는 경우 수사가 부족, 부당하거나 위법하여 기소가 잘못되었다고 공소기각판결을 하거나 무죄판결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됩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통한 형사절차 지배
미국이나 영국, 일본 같은 경우에는 경찰이 직접 수사권을 행사합니다.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경우는 예외적입니다. 검찰은 기소권을 가지고 경찰과 협조를 하면서 또 경찰의 위법수사나 부당한 권한남용을 통제합니다. 한국과 같이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면서 또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는 상명하복식 관계는 없습니다. 한국의 모델이라고 하는 독일의 경우에도, 검사는 수사 인력이 없기 때문에 상명하복식의 수사지휘가 아니라 경찰과 상호 대등한 관계에서 협조적인 관계를 형성합니다.
그러나 한국 검찰은 절대로 수사지휘권을 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검찰이 수사의 지배에 집착하는 이유는 경찰을 통제하기 위해서입니다. 경찰에 대한 통제는 검찰권한의 적극적인 확대입니다. 검찰이 가진 권한에 더하여 경찰이 가진 권한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검찰과 경찰의 동일화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만큼 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감시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게 되고 국민의 인권은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검찰은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행사를 인권보호라는 명목으로 정당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검찰은 인권옹호기관이 아닙니다. 검찰 역시 국가의 형벌권을 행사하는 권력기관일 뿐입니다. 수사는 수사기관에게, 인권옹호는 변호사에게 맡기는 것이 타당합니다. 수사기관에게 인권옹호까지 맡기는 것은 모순입니다. 이것은 처방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의약분업이 필요한 이유와 동일합니다.
검·경수사권 조정의 원칙
권력기관의 강력한 권한인 수사권과 기소권은 제도적으로, 사실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타당합니다. 권력기관의 과도한 권한 행사를 제도적으로 방지함으로써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검·경의 수사권 조정이 국민의 인권보호와 아무런 관계없는 권한 다툼이나 권한 배분으로 되어서는 안 됩니다. 최근 검·경수사권 조정 논의에 이런 경향이 있습니다. 검·경수사권 조정을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은 권한의 배분이 아니라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통한 국민의 인권옹호입니다. 이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검·경수사권 조정의 근본 원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원칙 1> 수사권한의 총량이 줄어야 합니다. 지금도 한국의 수사기관은 막강한 수사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한다고 하면서 기존에 있었던 견제장치를 없애거나 혹은 기존의 수사권을 확대해선 안 됩니다. 이렇게 되면 수사기관의 권한이 확장돼 국민의 인권이 위험해 집니다.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로 나타나는 수사권한의 증가는 피의자․피고인의 권리 강화, 변호인의 확충, 법원에 의한 통제, 경미한 범죄의 비범죄화, 수사의 과학화, 인권친화적 수사개혁 등을 통하여도 견제할 수 있습니다.
<원칙 2> 수사권과 기소권이 장기적으로 분리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합니다.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무상 공백은 최소화돼야 합니다. 검·경수사권 조정을 순차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방향은 명백히 수사권과 기소권이 분리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경찰의 수사개시권 부여를 이유로 이를 다시 검찰이 전면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은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방향과 일치할 수 없습니다.
<원칙 3> 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감시 시스템이 확충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경찰과 검찰 두 기관 사이의 평등을 전제로 합니다. 검찰은 원칙적으로 기소권으로 경찰을 견제, 감시하게 됩니다. 경찰은 자체적인 수사권한을 가지고 검찰을 견제할 수 있습니다. 이 관계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평등한 관계입니다. 검·경수사권 조정은 검·경의 불평등한 관계를 평등한 관계로 바꾸는 것이어야 합니다. 검찰의 일방적인 우위나 상명하복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것은 검·경수사권 조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원칙 4> 강화되는 경찰의 권한에 대한 통제장치를 함께 마련해야 합니다. 경찰이 수사권을 갖는 것은 명백히 경찰권한의 강화를 의미합니다. 경찰의 불철저한 개혁 정도나 수사과정의 인권침해적 요소, 경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생각하면 경찰에 대한 견제장치는 필수입니다. 그러나 검찰을 동원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치경찰제를 실시함으로써 국가경찰이 갖는 문제점을 최소화하고 경찰위원회 등을 통한 문민통제를 강화하여야 합니다. 내부의 감찰기능을 강화하고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감사위원회 제도를 운영해야 합니다. 고위직 경찰의 비리를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도 필요합니다.
<원칙 5> 검·경수사권 조정은 국가적 권력 재편과제입니다. 따라서 최종적인 결정은 검찰과 경찰에 이해관계를 갖는 부처와 기관, 전문가와 국민이 참여하는 가운데 이뤄져야 합니다. 검찰과 경찰 양자의 합의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것이 결정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참여정부에서 검·경수사권 조정이 실패한 이유 중의 하나는 검찰과 경찰의 자발적인 합의에만 너무 의존한 것이었습니다. 검찰과 경찰의 의견을 존중하되 그 논의과정을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정치권력과 국민이 통제해야 합니다.
이런 원칙에 비춰본다면 최근 벌어지는 검·경수사권 조정은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원칙에서 떨어져도 한참 떨어져 있습니다.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어떠한 의식도 없기 때문에 감동이 없는 것입니다. 검·경수사권 조정이 단순한 과제가 아니라 권력기관 재편 과제입니다. 따라서 검찰개혁 및 경찰개혁과 함께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부분적인 손질로는 검·경 양자의 갈등만 깊어질 것입니다.
수사는 경찰에게, 기소는 검사에게, 변호는 변호사에게
현재와 같은 수준의 검·경수사권 조정은 수준미달입니다. 검찰과 경찰에게 더 많은 권한만 줍니다. 국민의 인권이 어떻게 더 잘 보호되고 향상되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권력기관 개혁의 핵심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과 향상입니다. 최근의 검·경수사권 조정은 검찰과 경찰 사이의 권한 다툼으로만 되고 있어 소리만 요란하지 실질적인 성과는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참여정부 당시 검·경수사권 조정은 지금보다는 훨씬 폭넓은 구조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경수사권 조정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양 기관이 서로 타협하지 않은 것입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형사소송법 개정 등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당시 미(未)합의 부분은 의외로 적습니다. 검·경이 합의한 부분은 당장 시행이 가능한 것을 중심으로 매우 많고 다양했습니다. 합의된 부분이 합의되지 않았던 부분보다 월등히 많았다는 것은 검·경수사권 조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검찰과 경찰 양 기관이 모두 수사권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나아가 검·경수사권 조정은 참여정부 당시 검·경의 합의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지금의 검·경수사권 조정도 참여정부의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져야만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김인회 /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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