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근 기자 taegun@vop.co.kr 입력 2012-01-31 13:51:50 수정 2012-01-31 16:08:23 ⓒIAEA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해 11월 18일 발표한 이란 핵개발 보고서 조태근 기자taegun@vop.co.kr 美, 허점투성이 IAEA 이란 보고서로 전쟁까지?
[이란 제재, 무엇이 문제인가①] 이슬람혁명 이후 美 대 이란 제제의 略史
미국과 유럽이 이란의 핵개발 저지를 목표로 추진중인 대이란 석유 금수조치에 이란이 호르무츠 해협 봉쇄 등 강경대응을 천명한 가운데 이번 IAEA의 조사와, 이란과 5+1(5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독일) 중재 그룹 간 합의 과정에 따라 향후 서방의 이란 제제 추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 서방의 대이란 제제는 가깝게는 지난해 11월 8일 발표된 25쪽 분량의 IAEA 보고서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발표 당시부터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영국.이스라엘의 정보기관들이 제공한 2005년 이전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됐다는 비판이 전직 IAEA 전문가들로부터 나온 바 있다. 실제 보고서를 보면 "이란 정부가 2003년까지 핵무기 장치에 적용되거나 군사적 목적에 활용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추진했으나 이후에 이중 일부 활동이 진행중일 수도 있다"는 수준이었다.
미국 핵과학자들의 저명한 싱크탱크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도 25일 발표한 이란 핵보고서에서 이란이 핵무기 제조를 결정했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으며, 핵무기 제조는 단시간 내에 비밀리에 무기등급으로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는 기술이 있을 때라야 가능하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중국, 인도 등이 이란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밝힌 요인 중 하나는 이같은 IAEA보고서 자체의 신뢰성 문제 때문이었다.
특히 이란은 우라늄농축에 암을 치료하는 방사성 동위원소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주장해 왔는데, IAEA도 지난 9일 이란 핵시설의 우라늄 농축 수준이 농도 20% 수준이라며 핵무기 생산을 위한 90%농축에 못미친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IAEA보고서가 발표되자마자 미국 의회는 지난해 11월 15일 대이란 제재 법안인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켰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법안에 서명했다. 이란의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어떤 경제 주체도 미국의 금융기관과는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국방수권법은 각국 세계의 은행들이 달러 거래를 계속하려면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를 끊도록 강제하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이란산 원유 수입을 못하도록 해 이란으로의 현금유입을 차단하려는 전략이었다. 단, 국방수권법의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동맹국들은 이란산 원유의 수입을 '비중 있는(significant) 규모'로 줄여야 한다.
미국은 IAEA가 이란의 우라늄 농축이 20%수준이라는 점이 공표된 데 대해서도 '그정도면 향후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90% 농축으로 가는 수순'이라며 최근에는 "이란이 1년 내에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다"(리언 파네타 국방장관)고 말하기도 했다. 유럽도 23일 브뤼셀에서 열린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란으로부터 새로운 원유를 수입하거나 구매하는 계약 체결을 즉각 금지하고, 기존 계약은 오는 7월1일까지만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대해 이란은 “이란 석유수출이 금지되면 한방울의 원유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츠 해협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벌였다. 최근에는 이란 금수조치에 합의한 EU에 대해 원유 수출을 선제적으로 중단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미국 등의 이란 제재는 이번 IAEA보고서를 계기로 첨예화 됐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팔레비 왕조 붕괴를 가져온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계속된 서방의 적대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지난 2010년 8월에는 이란의 첫 원자력 발전소인 부셰르 원전에 연료를 주입했다. 이슬람 혁명 이전인 1975년 독일 지멘스사가 시작한 부셰르 원전은 1979년 이슬람 혁명, 1980년~88년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됐지만 95년 러시아가 이어받아 건설을 추진하다 15년 만에 가동을 시작했다. 부셰르 원전이 첫 삽을 뜬지 35년 만이었다.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미국이 주도한 경재제재 때문에 세계 2위의 산유국이면서도 원유정제시설이 부족해 석유나 휘발유를 수입해 왔다. 만성적인 전력부족 사태도 이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는 이라크의 화학 무기로 대규모 인명피해를 입자 핵개발에 대한 열망도 커졌다. 그러나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90년대까지 핵개발은 저지됐다.
이에 대해 2000년대 들어 미국 등 서방과 이스라엘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란의 개입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하며 3차례에 걸친 유엔안보리 제제와 IAEA를 통해 이란을 압박해 왔다.
특히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 행정부 시기에는 때마침 2005년 강경 보수파인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란과 미국의 대립은 거세졌다. 미국이 이란을 정권 교체 대상국으로 삼고, 이라크 침공에 이어 이란 침공설까지 나오자 2005년 8월 이란은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재개한다고 선언했다. 2009년 9월에는 나탄즈의 우라늄 농축 공장에 이어 중북부 도시 쿰 인근 산악지역에 제2의 농축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고 IAEA에 신고하기도 했다. 지난 8일 이란 정부가 미국과 이스라엘 등의 공격에 취약하다며 새로운 시설에서 우라늄 농축을 다시 시작했다고 밝히면서 거론한 시설이 바로 쿰 산악지역이다. 이번에 이란을 방문한 IAEA 대표단이 조사할 시설도 바로 이곳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비호 아래 아예 이란 핵시설에 대한 공습 가능성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이스라엘은 실제로 2007년 9월 시리아의 핵의혹 시설을 기습폭격해 초토화한 바 있다.
부시 행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오바마 행정부도 이란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 없다"며, "모든 옵션은 테이블 위에 있다"는 입장이다.
당초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유세 때는 "터프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통해 이란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었다. 2009년 3월 20일 이란의 설날인 '노루즈' 때는 이란 국민들에게 "새로운 출발"에 나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란의 최대 명절에 축하와 함께 관계 개선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제제에만 몰두해 왔다. 2009년 2월 강경파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총선에서 승리하고, 2009년 6월 이란 대선에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재선한 점도 상황을 어렵게 했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부터는 초강경론으로 선회했다.
지난 24일 상하원 합동 신년 국정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를 획득하는 것을 단호하게 막을 것이며 이를 위해 어떤 옵션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핵문제의 평화적인 해법은 여전히 가능하고 바람직한 방법”이라면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국제공조에 의한 제재를 통해 이란은 과거보다 고립됐고, 제재가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글로벌 아마겟돈:핵무기와 NPT'(정욱식, 2010 책세상)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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