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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운명(運命)과 운명(殞命)의 사이에서

노둣돌 2011. 12. 6. 11:53

 

 

 

[3회] 운명(運命)과 운명(殞命)의 사이에서

 

노무현 평전/[1장] <노무현 평전> 서설                   2011/09/04 08:00 김삼웅

 

 

1849년 12월 22일,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에 섰다.
마치 예수처럼 두 사람의 사형수와 함께 두 눈이 가려진 채 사형대에 묶였다. 그러나 형틀이 십자가는 아니었다. 사형수에는 최후의 5분이 주어졌다.

5분 뒤에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숨쉴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다. 그 중 2분은 동지들과 작별하는데, 2분은 삶을 되돌아보는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번 보는 데 쓰고 싶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도스토예프스키는 뒷날 장편소설 <백치>에서 자신의 절박했던 운명의 순간의 경험을 이렇게 남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가운데 2009년 5월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이 투신했다고 알려진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경찰들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 유성호


그로부터 정확히 160년 뒤인 2009년 5월 23일 오전 6시 14~17분(추정)경,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뒷산 부엉이바위에 섰다. 이 바위 절벽의 높이는 45m, 그는 이 시각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도스토예프스키처럼 5분이었을까 더 길었을까.
가족ㆍ동지들ㆍ국민이 생각되고, 자신을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악인들의 면면이 떠올랐을지 모른다. 그리고 새벽녘에 컴퓨터 자판을 눌러 쓴 유서를 다시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죽음보다 더한 굴욕을 견디면서 ‘발분지서’(撥憤之書)라는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은 생과 사를 자연의 순환법칙으로 이해하면서 죽음의 의미를 ‘태산’과 ‘홍모’로 분류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때로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때로 어떤 죽음은 홍모보다 가볍다.

人固有一死
或重或泰山
或輕於溩毛

사마천은 필생의 작업 <사기(史記)>의 열전에서 많은 인물에 대한 평전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얻은 결론의 하나로 사람에 따라 생과 죽음의 의미가 ‘태산’과 ‘홍모’로 나뉘게 된다는 것이었다.

고래로 각급의 지도자가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아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택일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생과 사의 갈림이 자신에게 주어졌을 때, 유방에게 패한 항우는 “하늘이 자신을 버렸다”고 사(死)를 선택하고, 사마천은 생(生)을 택하였다. 초나라 절세의 시인ㆍ정치가 굴원(屈原)은 소인배들의 참소를 견디다못해 멱라수(泪羅水)에 몸을 던졌다.

전봉준은 부능부패한 보수세력이 추악한 권력을 지키고자 외세(일제)를 끌여들여 그들과 합작으로 만든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즉흥시 <운명(殞命)>을 지었다. 항우의 심사와 비슷했던 것 같다.

時來天地皆同力
運去英雄不自謀
愛民正義 我無天
爲國丹心誰有知

때가 오면 천지가 모두 힘을 다 하더니
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쩔 수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세운 것이 무슨 허물이랴
나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